환절기 - 이용호 한때 당당하던 그의 지문은 간 데가 없다 슬그머니 개인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손가락의 무늬를 그리워하다가 새벽 첫 버스를 놓쳤다 마지막 회를 향해 가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인력 소개소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새벽 추위에 떨고 있던 개 한 마리 시선이 그와 마주치자 맹렬하게도 짖어댄다 아침부터 소주잔이 급속하게 이동한다 아픈 만큼 마시는 건지 마셔서 아픈 건지 모를 사람들이 피워 놓은 장작불 속에서 서로를 외면하던 눈동자들이 서럽게 울어 대기 시작한다 주민등록증을 건네고 하루를 저당 잡히는 그의 한숨 소리가 사무소 계단에 쌓여 갔다 여기저기 떨어진 단풍잎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계산해 본다 그도 이번 생에 이루지 못한 것들의 목록을 적어 보다가 다음 생에서는 어떤 목록을 가진 이파리로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