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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지막 집 - 손음

바닷가 마지막 집 - 손음 햇살이 꼬들하다 무거운 고요가 더러운 개 한 마리를 끌고 다니는 정오 빨간 다라이에 핀 접시꽃이나 본다 채반에 널린 납세미나 본다 상자같이 허술한 집에 건들건들 한 채의 배를 타고 앉은 듯 달포째 저렇게 잠겨있는 사내, 이런 개... 설핏한 나이에 죄다 욕으로 마시는 소주를 뭐라 말할까 모든 걸 다 떨어먹고 여기까지 와서 생이 이렇게 요약될 줄 몰랐다 그래 어쩔래, 나 이제 고집 센 쉰이다 창문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 사내를 닮은 집도 말이 없다 그 둘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동안 사내는 선창가나 한 바퀴 돌까 말까 천막 횟집에 상추 쌈을 싸 주느라 난리도 아닌 커플이 입이 찢어져라 좋아 죽는다 확, 불이라도 싸지르고 싶은 저녁이라면 어쩔 것이냐고, 파도 소리 귀에 고이도록 쉰을..

한줄 詩 2021.05.23

분홍주의보 - 배정숙

분홍주의보 - 배정숙 5월의 젖을 물고 있는 네 피부는 부드럽기도 하구나 네가 피어나는 소리에 한잠도 못 이루고 기어이 눈앞에서 스캔되는 분홍 5월과 궁합이 잘 맞는 색 빛의 잔망스러운 입술 그 한 점의 고집에 멱살을 내어주게 되면 오염인지 감염인지 흐드러진 향기는 참으로 위험한 구름인자입니다 그러니 눈치 없는 에로스는 키스를 조심해야합니다 분홍의 낙화 유혹은 하르르 봄을 따라서 쉬 지는 것 조심해야 할 것은 달콤하고 붉은 것은 오직 불안합니다 꿀이 흐르고 팡파르를 울리고 날고 싶은 길만 자꾸 날고 싶은 것은 분홍을 오독하는 때문입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보면 가시가 보이게 되는 것을 바람도 한 때 다정한 분홍의 방향으로 기울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살얼음을 딛고서도 거짓말처럼 잠깐 전..

한줄 詩 2021.05.22

죽음 밖 어디쯤 있을 나 - 심명수

죽음 밖 어디쯤 있을 나 - 심명수 언제쯤이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거미는 결코 죽을 생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거미가 몇 초 동안 살아 꿈틀꿈틀한다 주검의 날개가 겨드랑이로부터 돋아난다 미동도 없이 거미는 자꾸 허기를 느끼곤 한다 아까 먹다 만 치킨 날개를 후회한다 주검, 왠지 살아 있을 때보다 정신이 멀쩡하다는 느낌 하지만 마취가 풀리듯 점점이 암막처럼 펼쳐지는 빛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던 날벌레들의 절박했던 순간, 등골이 환해진다 일상이 투시되던 생, 생이란 몇 층에서 누굴 만났다 몇 층으로 미끄러지는지 개인 사생활 차원에서 거미들에겐 논란의 여지가 없을 리가 없다 전생에서도 이승에서도 나의 빌어먹을 습성은 변함이 없다 빈손에 가방도 없어 고만고만한 인연 주렁주렁 관념들로 꼬여 또..

한줄 詩 2021.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