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지막 항구에서 - 이형권

마루안 2021. 5. 27. 19:36

 

 

마지막 항구에서 - 이형권


어제는 항구에 가서 그대를 보았다
머지않은 눈보라의 예보가
그물처럼 내리고
저마다의 가난과 행복을
한 두릅씩 흥정하는 인파 속에서
흰 파도처럼 웃어 대는 그대를 보았다

불현듯 그대가 그리운 날이면
나그네처럼 항구를 헤맨다
먼 바다의 추억으로
몸을 흔드는 깃발들
회선의 싸이렌이 울고
무인등대 사무친 외침 속에서
바다의 꿈을 홀로 적시는 그대의 노랫소리

나는 그대를 향해 나그네의 길을 준비하리라
땅거미를 밟고 초병들이 들어서기 전
집어등 같은 희망을 달고 떠나가리라
흉어기의 뱃전에 그물코를 건져 올리며
그대의 겨울을 향해 떠나가리라

 

 

*시집/ 칠산바다/ 문학들

 

 

 

 

 

 

등대 - 이형권

 

 

쓸쓸하구나

내 마음은 언제나 해 지는 등대 밑을 떠돌았으니

그대 먼 곳으로 떠나갔을지라도

옛 생각에 슬며시 그리워지거들랑

저물어가는 등대 아래

쓸쓸한 바람 속으로 돌아와주오

 

무정하였을지라도

그대 마음에 몹시 아픈 상처가 되었을지라도

내가 머물던 자리는

언제나 해 지는 바닷가 쓸쓸한 언덕

어둠 속에 홀로 선 등대와 같았으니

아무런 말도 없이 그곳으로 와주오

 

먼 훗날 우리의 사랑이 잊혀졌을지라도

쓸쓸한 바닷가에 홀로 선 등대가 있거들랑

경쾌하면서도 슬픔이 배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오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되어

나는 그대의 옷섶에 부서지리니

검고 푸른 바다의 눈빛은

그 옛날 내 가슴속에 타오르던

뜨거웠던 사랑이라 기억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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