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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으로 혼자서 걸었습니다 - 김인식

예전에 인도 여행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그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훌쩍 인도로 건너가 반 년쯤 머물다 온 지인이 있었다. 그때 나도 곧 다녀와야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영영 못 가고 말았다. 먼 여행지일수록 떠남을 일단 저지르고 봐야한다. 많은 인생사가 그렇지만 여행도 갈 이유보다 못 가는 핑계가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다. 내게는 인도도, 티벳도, 몽골도 늘 생각만 했지 떠나지 못한 여행지였다. 내 인생은 한 달쯤 온전히 여행자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각박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랬다. 늘 떠나고 싶었던 여행지이면서 실행하지 못했던 곳, 못가는 아쉬움을 달래느라 여러 여행서를 읽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책은 김인식 선생이 70살이 된..

네줄 冊 2021.08.06

21세기 벽암록(碧巖錄) - 최준

21세기 벽암록(碧巖錄) - 최준 자신(自信)을 못 믿는데 어디서 자신(自身)을 찾겠나 청사(廳舍)와 의사당(議事堂)의 부조리나 채굴하려다 속아온 길 구만리(九萬里) 날마다 수염을 깎고 베고 잤던 무릎에다 대못을 치네 저를 잃어버리고도 저리 말짱한 물그림자에게 만이라도 제대로 보이고 싶어서 천년 바람의 가야금 줄도 실은 몹쓸 인종사(人種史)처럼 소용없는 것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고백하라면 한나절은 말할 수 있지 그게 설혹 구만리 허황일지라도 변명이란, 나를 속여 온 나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칠 얘기 아직은 멀쩡한 두 주먹으로 머리 쥐어박으며 걸어가다 옛 스승들처럼 홀연히 증발해 버린다 해도 세간에서의 울화를 어찌 우화(寓話)였다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나를 지나오고 있던 나를 눈 뜨면 솟아 있는 백척간두..

한줄 詩 2021.08.06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 주창윤

안드로메다로가는 배민 라이더 - 주창윤 머나먼 길이다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 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의 속도로 질주한다.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외계인 폭주족들, 향하는 곳이 암흑성운인 줄도 모르고 무한대로 들어간다 큰 코끼리 별과 반딧불 별 사이 스타벅스 커피숍을 지나면 낙태된 자매 별들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닌다. 소행성 벨트를 따라 흘러나오는 미세먼지와 서울에서 뿜어낸 가스가 모여 잉태한 신성(新星)들 사이에 있는 분식집 은하정에서 라면 한 개와 이천 원짜리 김밥 한 줄로 나는 성급히 먹는다. 천공의 성 라퓨타 계단 아래서 마구 떨어지는 운석들이 우주 아래에 하얗게 쌓인다 기계인간 테레사가 "내 별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 별도 마..

한줄 詩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