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가항력 - 고태관

마루안 2021. 8. 2. 19:42

 

 

불가항력 - 고태관

 

 

깔깔깔 웃다가 잊을 거짓말

허튼소리를 궁리하면서 하루를 다 보낸다

 

거짓말에 실패한 만우절

나머지 364일 동안 진심을 그르친다

 

1월1일 카운트다운이 지나고 드는 생각

사람다운 것에서 점점 멀어지는 거라면

말라 버린 출생신고 잉크가 희미해지고 있다면

그게 늙는 거라면 서글프겠다

 

어른이 되다니

어른이 되고 나서 그다음은 뭐가 되지

다음 단계의 변신이 남지 않은 로봇처럼 어쩔 줄 모르겠다

쓸쓸하겠다

 

새로 핀 벚꽃보다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 많았다

활짝 핀 꽃다발을 안고 해변을 달렸지만

막상 파도를 보면 심드렁하고

 

늘 떠나고 없는 사람이 보고 싶다 나는

모래성으로 허물어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겠다

 

 

*시집/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 걷는사람

 

 

 

 

 

 

보문 - 고태관

-죽어서도 나는 갈 데가 없어요

 

 

붉은 눈두덩 비비는 골목 입구

가로등은 무너진 담벼락을 해부 중

길고양이들이 불협화음으로 허기를 달랜다

부검 끝난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파묻는다

그림자들은 빈소 밖에서 붐빈다

 

모르는 사람의 뒤를 밟게 되는 샛길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지 않아도 이웃의 저녁상을 헤아릴 수 있다

며칠째 불 꺼진 재개발 조합장네

동의서를 작성하는 순서대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막다른 길에 벽보가 붙었다

낙서금지 낙서 위에서 벗겨지는 스프레이 글씨

조합원 동의 없는 개발 절대 반대

 

문상객이 되어 몸을 웅크리고 문을 연다

제각각 터져 나오는 길고양이 곡성을 뒤로하고

집 떠나 집으로 가는 길

골목의 유족들이 서성거리는 녹슨 철문 앞에

미납된 고지서가 흩어져 있다

 

새벽에도 꺼지지 않는 조등 아래

물그릇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손 뻗는 여승

나비를 부르고 있다

 

 

 

 

# 고태관. 래퍼 피티컬(PTycall). 198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99년 고등학교 락밴드에서 래퍼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대학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07년 결성한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에서 리더로 활동했다. 2020년 5월 15일 세상과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