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 주창윤

마루안 2021. 8. 3. 22:30

 

 

안드로메다로가는 배민 라이더 - 주창윤

 

 

머나먼 길이다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

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의 속도로 질주한다.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외계인 폭주족들,

향하는 곳이 암흑성운인 줄도 모르고

무한대로 들어간다 큰 코끼리 별과 반딧불 별 사이

스타벅스 커피숍을 지나면

낙태된 자매 별들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닌다.

 

소행성 벨트를 따라 흘러나오는 미세먼지와

서울에서 뿜어낸 가스가 모여 잉태한

신성(新星)들 사이에 있는 분식집 은하정에서

라면 한 개와 이천 원짜리 김밥 한 줄로

나는 성급히 먹는다.

 

천공의 성 라퓨타 계단 아래서 마구 떨어지는 운석들이

우주 아래에 하얗게 쌓인다

기계인간 테레사가

"내 별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 별도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군요"라고 말할 때,


나는 이미 밤이 없는 행성을 지나

낮이 없는 행성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한국문연

 

 

 

 

 

 

안드로메다에서 오는 배민 라이더 - 주창윤

 

 

다시 머나먼 길이다 안드로메다에서 청량리역까지,

별의 여왕에게 배달된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은

긴 꼬리별이 되어 흩어졌다.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 지금 돌아가고 있다고.

그래도 아내가 받으려면 몇 년은 걸리지 않을까

떠나는 길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멀었다.

 

암흑성운인 줄 도 모르고 무한대로 달렸던

외계인 폭주족들은 어디 가고

빈 헬멧과 오토바이들만이 떠다녔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의 전송 속도보다 빠르게 질주하면

별의 목소리처럼,

내 문자 메시지들은 뒤에 처져 따라온다

낮이 없는 행성을 지나 밤이 없는 행성에서

기러기 떼 별처럼 날아가는 내 문자 메시지가 보였다.

 

나는 문자 메시지보다 빠르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질주해 온 일만 광년의 속도로.

 

 

 

 

*시인의 말

 

언어의 안개를 명징하게 걷어내고 싶었다.

날 것을 명쾌하게,

표면적으로,

그냥 입에 녹듯이,

 

침묵이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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