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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동에서 죽음의 방식 - 전장석

난곡동에서 죽음의 방식 - 전장석 마치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처럼 죽음은 골방에서 사흘 만에야 꺼내졌다 이웃집 할머니의 말이 적중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들키고 말았다 잠든 척하며 119차에 실리기 전까지 죽음은 가장 평온한 잠에 떨어져 있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찬 틀니를 물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초의 발설자가 얼굴을 쓰다듬자 식은 손이 침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의심할 여지없는 자연사라며 구급대원들은 시신을 재빨리 수거하였다 가족들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목격자들이 유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가파른 언덕길 꼭대기 삶이었다니 이제 길을 내려가야 하지만 팽팽한 곳을 향해 그는 처음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딱 한 번만! 하고 눈 뜨려다 내려가는 길을 보고 안심한 눈을 다시 감았다 *시집/ 서..

한줄 詩 2021.08.12

사소한 자유 - 이송우

사소한 자유 - 이송우 눈발 옆으로 날리는 비로봉에서 땀에 젖은 안경은 불투명 얼음 조각이 된다 동여맨 얼굴 틈을 기어이 뚫는 눈썹까지 허연 바람에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렵다 두터운 방한 장갑 속 손가락마저 얼리는 소백 칼바람 앞에 버프를 내리고 말할 용기가 없다 볼 수 있다 걸을 수 있다 이 사소한 자유가 얼마나 큰 것인가 말할 수 있다 아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공기처럼 가벼운 이 자유가 얼마나 컸던 것인가 *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실천문학사 옐로우 콤플렉스- 이송우 아니오, 나는 모릅니다 오빠 대신 여순 부역자로 총살당한 스무 살 여인의 노래, 구례 산수유를 산수유는 유채꽃을 닮았고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어제 내린 춘삼월 폭설에 만복대 하얀 턱수염을 보았습니다 봄꽃 만발한 서시천..

한줄 詩 2021.08.12

내가 되지 않는 것들 - 서윤후

내가 되지 않는 것들 - 서윤후 높은 곳에서 떨어졌거나 바닥을 구슬프게 흘리고도 멀쩡한 것들 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들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 사람을 고치는 일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기도가 엇나가는 신의 겨드랑이 뒤에서 어린양 부리는 것들 두서없는 꿈의 멀미를 앓는 것들 표본과 다른 독개구리들 제 안에서 독을 터뜨려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이 꽉 물었던 이름을 놓아버린 것들 매번 진심이었던 생일 다음날처럼 허겁지겁 먹었던 사람의 눈빛이 사과나무 밑에서 배앓이하는 뒤틀린 틈으로 마구 솟구치는 송충이들 하하하 갉아먹히는 오래된 농담들 실없이 저물었다가 돌아오지 않는 옛사랑에 꽂아둔 실핀들 결코 흘러내리지 않을 것들 내가 매달려도 내가 될 수 없는 공중의 손잡이들 손님 없이 시동 ..

한줄 詩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