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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위에서 자란 바람에게 - 박주하

꽃잎 위에서 자란 바람에게 - 박주하 ​ 오늘은 또 어떤 마음으로 울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는 장미의 심장을 찢는 법부터 배웠구나 어제의 얼룩을 지우지도 못했는데 오늘 주고받은 수치심들이 어둠에 물들어 갑니다 우리가 배운 가혹한 말들은 심장에서 나왔으나 돌아가는 길을 모릅니다 돌아가도 붉은 꽃을 피울 여유는 없겠지만 하나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한 죄는 상한 여름밤을 지나갑니다 거리는 이미 낡아 버렸고 도처에 자신을 끌고 가는 발소리들이 낯설어지는 이곳 한없는 마음의 겹이 타올랐던 것인데 왜 우리는 늘 서로 다른 말을 듣는 걸까요 당신의 날들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돌아갔지만 기억은 처음으로 돌아와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앞으로 열 걸음, 뒤로 열 걸음 매일 십자가가 열리는 여름밤 오직 십자가만 ..

한줄 詩 2021.08.16

혼자와 그 적들 - 이문재

혼자와 그 적들 - 이문재 혼자 살아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 먹는 밥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없는 사람 없던 사람 매번 곁에 와 있었다 혼자 마시는 술도 시끌벅적 고마운 분들 고마워서 미안한 분들 생각할수록 고약해지는 놈들 그 결정적 장면들이 부르지 않았는데 다들 와서 왁자지껄했다 저희들끼리 서로 잘못한 게 없다며 치고받기도 했다 혼자 있어보니 혼자는 불가능했다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나였다 *시집/ 혼자의 넓이/ 창비 우리의 혼자 - 이문재 혼자는 바쁩니다 외롭거나 쓸쓸할 겨를이 없습니다 혼자는 오늘도 모든 걸 혼자서 다 하려고 정신이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지 않는 것도 혼자 전기밥솥 예약 버튼을 눌러놓지 않는 것도 옛 애인 이름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도 국가고시에 접수만 하고 시험장에는 안 가는 것도 미..

한줄 詩 2021.08.16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 김동섭

미국행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툭 하면 엎어지곤 했던 안 풀린 인생에서 미국행은 도피처이자 새로운 인생을 펼칠 곳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국 교포가 그랬다. "미국은 본인 하기 나름이에요. 외국에서 꿈을 이루기엔 미국이란 나라가 최고에요." 그때는 공감이 안 갔는데 어쩌다 보니 오매불망 미국행을 바라게 된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 대사관 앞 긴 줄도 서 보았다. 어찌나 비자가 까다로운지 정식 이민은 불가능했다.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정식으로 안 되니 불법 이민을 시도했다. 진짜 여러 군데 알아봤다. 착수금 조로 돈 조금 날리고는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에서 이민자가 가장 많다. 난민이든 불법 이민자든 어떻게 해서든 미국을 가려고 한다. 어찌..

네줄 冊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