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여름성경학교 - 박민혁

마루안 2021. 8. 18. 19:43

 

 

여름성경학교 - 박민혁

 

 

부직포로 만든 예수의 가면을 쓰고,

어린이들을 보듬어 준다.

 

그중 한 아이가 내 귀에 속삭이길,

 

하나님인 척 마세요.

 

무얼 잘했는지도 몰고 일단은

참 잘했어요.

 

그래 사실, 모방할 것이 없으면 불안했던 것.

너와 나는 서로를 흉내 내는 거울에 불과했나?

결국 우리, 끝까지 이길 수 없는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는 것.

너는 언제까지 침묵하고만 있을 셈인지.

너라고 불러서 화가 난 거니?

 

짓궂은 불행이, 내가 쥔 성스러운 마리오네트의 끈을 툭툭 끊고, 달아나는 것을 본다.

 

십자가에 걸어 놓은 내 밀랍 인형을 떼 낸 뒤 나도 모르게 그만 두 손을 모으고,

 

신이여 다만.....

 

인간의 가호가 있기를.

 

나는 조금 지쳤다.

아니 조금 삐쳤다.

 

 

*시집/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파란출판

 

 

 

 

 

 

여름성경학교 - 박민혁

 

 

첨탑의 십자가가 하늘에 대고, 누적된 것을 긁는다. 죄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는, 예수는 지금쯤 교회 지붕에서 투신할 준비를 마쳤을지. 어린이들은 긍휼이라는 달고 시원한 빙과를 조금씩 녹여 먹고 있었다. 올해도 심판은 불발. 나는 어젯밤 술이 덜 깬 일개 교사이며, 성경을 완독한 적이 없다. 상처는 때로 훌륭한 장난감일까. 새 신자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그의 어린 아들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연이어 밀알 같은 물풍선이 망설이 없이 터진다. 헌금할 돈은 종종 빠뜨리지만 꼬깃꼬깃한 연민은 주머니에 늘 두둑하므로, 죄질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 해외 선교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바자를 열고, 권사들은 그들에게 봉헌하고 있다. 유년을 같이한 몇몇 청년들은 전도사가 되어 사역하러 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지폐 몇 장이 속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종종 내 심장을 애무하는 목사의 공수에는 톡톡히 화대를 치르는 법. 어떤 몰약이 모태에서 물려받은 원죄와 신앙을 씻어 낼 수 있을까. 뱀은 늘 흥미로운 상징이며, 내 오래된 성경책의 얼룩진 앞 장에는 익사한 활자들이 몇 개의 계명을 힘없이 떠받치고 있다. 교회에서 받은 성금 통은 나날이 무거워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불우한 이웃은 가족이다. 가족은 늘 신보다 먼저 나를 용서하고, 나는 매일같이 그 형벌을 구걸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날은 온종일 입맛이 없었다. 주일이면 꼭 회개하는 육일간의 탕아. 굴종은 오랜 나의 학습이다.

 

 

 

 

# 박민혁 시인은 1983년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7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이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