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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 하상만

초원 - 하상만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토피 무리가 먹혀 가고 있는 동료를 바라보고 있다 하이에나는 검은 주둥이를 깊숙이 집어넣고 먹이를 물어뜯고 있다 토피들은 안다 하이에나가 먹을 만큼만 사냥한다는 것을 동료가 죽는 동안 안전하다는 것을 얼굴을 든 하이에나가 동료의 얼굴에 범벅이 된 붉은 피들을 혓바닥으로 핥는다 서로를 닦아 주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먹고 있다 토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까 내가 아니니까 오늘도 무사하니까 약자들의 수는 언제나 더 많지만 소수를 이기지 못한다 모여서 달아나기만 한다 모여서 몰아내지 않는다 동료의 마지막 피까지 핥고 있는 하이에나를 보면서 자연스러운 거라고 자연은 변하는 법이 없다고 체념한다 초원의 청소부 독수리가 날아와 남은 음식을 먹는다 *시집/ ..

한줄 詩 2022.08.08

몸, 덧없는 몸 - 홍신선

몸, 덧없는 몸 - 홍신선 인간은 베잠방이 방귀 새듯 가뭇없이 사라지고 뭇 기관 허물어진 짐승인 몸만 그렇게 덧없는 몸만 남았다. 오냐 오오냐 말 안 해도 네 마음 다 안다고 낮은 소리 건네던 향로의 다 탄 무연향(無煙香)이 무시로 떨어져 내리고 밤 이슥해 나와 본 영안실 밖 내 등 뒤 하늘에는 옆구리에 소변 주머니 달고 곡기 끊은 그러나 편안한 얼굴로 잠 깬 구름 하나 떴다. 그 멀지 않은 곳 마침 열여드레여서 누군가 먼 길 채비로 잘 닦아 꺼내 논 신발 한 짝이 유난히 환하다. 그동안 궂은일 다 거두어 간다는 그동안 뭇 인연들 고맙다는 그니가 마지막 머무는 이승.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낮달이 뜨는 방식 - 홍신선 살아서 사람들의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철벙철벙 물탕 튀며 건너뛰었던 ..

한줄 詩 2022.08.03

어느 노인의 예감 - 부정일

어느 노인의 예감 - 부정일 할멈, 당신이 팔순 넘겨 오라는 당부 때문에 빈자리 옆에 누워 자고 일어나기가 지루했는데 팔순은 아직도 일 년이나 남았는데 할멈 죽고 이 년이던가 하나 남은 막살이를 아들에게 증여할 땐 나, 먼 길 갈 때까지 막살이에서 할멈이 두고 간 것들 만지다가 어느 날 조용히 따라가리라 생각했었네 객지 나간 아들이 살다가 어려워 빌린 빚이 팔아 간 돌랭이로는 모자라 막살이마저 비워줘야 하네 어디로 가야 하나, 갈 곳이야 이 넓은 세상 밤이슬 피할 문간방쯤은 있겠지만 채권자 양반이 오는 봄까지 기한은 줬으니 할멈, 그나마 올겨울은 걱정이 없네 아들놈이야 다시 일어설 테니 걱정 마오 잘난 자식에게도 어려운 시기는 있는 법 한때는 할멈과 나도 힘든 고비 넘기며 살았잖소 수중에 있는 몇 푼은 ..

한줄 詩 2022.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