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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이 좋을 때 - 황현중 시집

숨어 있는 시집 하나를 발견했다. 서점엘 가도 흔히 메이저라 불리는 시집 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 위주로 진열이 된다. 당연 독자들 눈에는 이런 시집이 먼저 보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무명 시인에게 눈길이 간다. 서점에서도 맨 앞자리에 있는 시집보다 모서리 한쪽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명 시집을 들춰보려고 노력한다. 이 시집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라는 제목 또한 마음에 든다. 나도 50대가 저물어 가면서 슬슬 구석이 좋아진다. 구석에 있어도 이렇게 향기를 품은 시집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시인의 약력을 보고 더욱 시에 몰입하게 되었다. 황현중은 시인은 청년 시절 학업을 중단하고 노가다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 우체국에 들어가 30여 년을 근무했다. 2015년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문학..

네줄 冊 2022.08.03

안식 - 최백규

안식 - 최백규 해변에서 깨끗한 하복이 마르고 있었다 하얗게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우리는 칠이 벗겨져도 썩지 않는구나 손을 모아 죽지 않는 행성을 만들었다 폭설을 떠올려도 하품할 수 있는 절기였다 그러나 눈을 감고 바람을 맞을 때마다 너의 울음소리가 밀려왔다 이것을 포옹이라 불러도 될지 오래 고민했다 언제쯤 나를 멸망시켜야 하나 걱정되었다 더는 새장을 씻길 이유가 사라져도 욕실에 웅크려 앉아 샤워기를 쥔 마음으로 모래만 털다가 부스러진 날엔 잠든 너를 위해 휘파람을 불어주었다 도저히 눈물이 잡히지 않아서 저 세계에서는 내가 죽은 역할이구나 이해했다 눈처럼 재가 날리는 곳에 닿으면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 고개 숙인 모두가 손바닥을 적시는 사이 그들의 행성을 훔치고 싶어졌다 유..

한줄 詩 2022.08.02

저물녘의 운산 - 변홍철

저물녘의 운산 - 변홍철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대출이자는 참 꼬박꼬박 나간다 꼬박꼬박 내가 지불할 이자를 알려주는 저 근면한 세상의 파쇄기에 옷자락이 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그대도 나도 오늘 충분히 투쟁하였다 이제 가족들이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며 인색하게 묻혀 올 신선한 바람을 찬거리 삼아 어두운 불을 켜고 밥상을 다시 차릴 시간이다, 1954년 김수영의 '나의 가족'은 지금 그대와 나의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을 겪은, 겪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런 건 표절이 아니다 아직 나에겐 두 병의 막걸리가 남아 있다 아마 금요일까지 남겨놓긴 어려울 듯하다 꼬불치지 말자, 절약하지도 저축하지도 말자, 새로운 날들에는 새로운 술이 반드시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없이 어떻게 사랑의 모험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랴 *..

한줄 詩 2022.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