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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에 두레박 내리는 - 배임호

목마름에 두레박 내리는 - 배임호 젊을 때는 시간이 기어간다고 나이 들면 시간이 날아간다고 이래도 투정 저래도 투정 투정 소리 듣기 싫어 가던 길 멈추고 싶어도 그저 묵음으로 동녘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은 그대를 향한 사시사철 목마름 우물 속 두레박을 내리는 사랑 때문 *시집/ 우리는 다정히 무르익어 가겠지/ 꿈공장플러스 온 세상이 내 품에 - 배임호 내가 세상을 미워할수록 세상은 나를 멀리하고 내가 세상을 보듬어 줄수록 세상은 나를 가까이한다 마음 한번 크게 먹고 눈 한번 크게 떠서 말 많고 탈 많은 세상 한번 허리 굽혀 안아주니 온 세상이 내 품에 머무는구나 # 배임호 시인은 1957년 무주에서 태어나 농촌의 정겨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고, 고등학교부터 서울 도심의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체험하..

한줄 詩 2022.08.09

가을 근방 가재골 - 홍신선 시집

요즘 홍신선 시집에 푹 빠져 지냈다. 워낙 이 시인이 서정성 짙은 시를 쓰기도 하지만 곧 팔순에 접어들 나이가 되어선지 세상을 달관한 듯한 싯구가 인상적이다. 이 시인은 나이 들수록 나와 궁합이 잘 맞는다. 예전에 읽은 젊을 적 시보다 근래에 발표한 시가 훨씬 공감이 간다. 왜 팔팔할 때 시가 아닌 노년의 싯구에 마음이 가는 것일까. 어쩌면 슬픔을 관조하는 각도가 달라져서일 것이다. 내가 푹 빠진 제목처럼 늦가을 오후의 햇살같이 점점 사그러지는 노년의 일상이 은은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 홍신선 갇힌 방 창턱에 두 손 포개 올린 채 넋 놓고 내다보는 초겨울 빗속 이즘 김장밭 무 밑드는 소리에 귀도 깨진 환히 살 마른 늙정이 초개(草芥) 하나 빗발들 사타구니에 고개 쑤셔 박은 채 서..

네줄 冊 2022.08.09

그때, 오이지 - 박위훈

그때, 오이지 - 박위훈 자귀나무 꽃그늘에서 찍은 가족사진처럼 짜디짠 가난이 서로를 옭아매 두었던 흑백사진이다 골마저 허옇게 낀 독 안의 염천(炎天) 단칸방, 쉰내 나며 부대끼던 내 키만 한 옹기그릇이다 감자며 옥수수 삶아 멍석에 둘러앉았을 때 무짠지와 빠지지 않던 저녁 두레밥상이다 누름돌 괸 오이지 쑤석이며 닳은 손끝으로 간을 보던 쭈글쭈글한 어머니의 아린 손이다 비칠비칠 빈손뿐인 나, 늘 낮은 곳에서 살갑다 꼬리 치며 괴던 댓돌 밑 누렁이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하는 여름도 한걸음 쉬어가는 찬밥 한 덩이다 *시집/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상상인 허물이라는 허물 - 박위훈 여름의 짧은 문장은 뾰족한 염천을 내딛는 울음의 한때 허공의 우듬지를 흔드는 건 매미 지루한 반복음을 해석해 듣..

한줄 詩 202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