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끗 - 이정희 공중이 휘어지면 계절의 한 부분이 꺾인다 휘어짐의 끝은 붉게 익은 홍시 몇 개 달려 있는 것 높은 곳의 가지를 휘는데 튕겨나가며 잘 휘어지지 않는다 그건 감 몇 개를 지켜내겠다는 나뭇가지들의 완고한 힘이다 그들만의 반경이고 외침인 것이다 높은 것들은 다시 높은 것들이 와서 먹겠지만 허공은 한 번의 그 빈자리를 망각한 적 없다 잡아당겼던 힘으로 겨우 이파리만 훑어 민망한 적 있다 나뭇가지들은 휘어지는 일로 얼마나 자신을 증명해야 할까 무수한 사이와 간극에 함몰된 긴장을 허공으로 튕겨 내려했을까 불안의 간격 그 갈라진 틈 사이 한끗으로 비켜간 안도가 수북하다 끝까지 지켜낸 것들은 결국 바닥의 것이 되겠지만 휘고 또 휘어지더라도 지켜내고 싶은 생명이 있다 *시집/ 꽃의 그다음/ 상상인 꽃의 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