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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끗 - 이정희

한끗 - 이정희 공중이 휘어지면 계절의 한 부분이 꺾인다 휘어짐의 끝은 붉게 익은 홍시 몇 개 달려 있는 것 높은 곳의 가지를 휘는데 튕겨나가며 잘 휘어지지 않는다 그건 감 몇 개를 지켜내겠다는 나뭇가지들의 완고한 힘이다 그들만의 반경이고 외침인 것이다 높은 것들은 다시 높은 것들이 와서 먹겠지만 허공은 한 번의 그 빈자리를 망각한 적 없다 잡아당겼던 힘으로 겨우 이파리만 훑어 민망한 적 있다 나뭇가지들은 휘어지는 일로 얼마나 자신을 증명해야 할까 무수한 사이와 간극에 함몰된 긴장을 허공으로 튕겨 내려했을까 불안의 간격 그 갈라진 틈 사이 한끗으로 비켜간 안도가 수북하다 끝까지 지켜낸 것들은 결국 바닥의 것이 되겠지만 휘고 또 휘어지더라도 지켜내고 싶은 생명이 있다 *시집/ 꽃의 그다음/ 상상인 꽃의 폐..

한줄 詩 2021.12.06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 이태겸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가 먹먹하다가 했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부당한 노동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원청과 하청의 수직 계약 관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 직장 내 성차별 등까지 다루며 노동자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정은(유다인)은 7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하청 업체로 파견 근무를 명령 받는다.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퇴사하게 만들려는 회사의 목적이다. 송전탑을 관리하는 섬에 도착한 정은은 그곳 소장과 직원들의 냉담한 대우에도 이를 악물고 버틴다. 해고는 곧 죽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못 버티고 떠날 것으로 생각했던 하청업체 노동자 충식(오정세)은 조금씩 정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엄마 없이 세 아이를 키우는 충식은 대리 운전과 편의점 알바까지 하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가장..

세줄 映 2021.12.05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 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꺼내놓고 보니,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이로구나 나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점점 투명하여 밝게 비추는 이 봄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보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문학동네 이 햇빛 - 이윤설 나에게 닿는 이 햇빛은 얼마나 멀리서 왔는가 이 빛의 실마리 끝을 잡아..

한줄 詩 202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