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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인과 고단한 청년 - 정덕재

건강한 노인과 고단한 청년 - 정덕재 -청년을 우대하는 나라 새벽에 약수터 물을 떠오고 아침에 게이트볼을 치고 점심에 오첩반상으로 끼니를 때우고 30분 낮잠을 즐기는 게 건강비결이라는 여든일곱 살 장만득 씨는 예순 살에 퇴직하고 칠순까지 아파트 경비원을 지냈다 그 이후 17년 동안 돈을 벌지 않았고 중국집 우동 먹을 때 탕수육 하나 추가하는 연금생활자로 살아왔다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다진 장만득 씨가 버스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이십대 중반 청년 하나가 차에 오른 뒤 긴 한숨을 내쉬자 장만득 씨가 벌떡 일어나 청년의 손을 이끌고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앉혔다 등록금 절반은 본인이 벌고 아르바이트로 방값을 내는 스물다섯 살 정민수 씨는 서서 졸거나 의자에 앉아 자는 일이 빈번하다 여자 친구 김순미 씨..

한줄 詩 2021.12.15

성스러운 한 끼 - 박경은

며칠 전부터 올 한 해 읽으려고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쌓인 책을 정리했다. 매일 매일이 새날이고 기념일이라 여기면서 살지만 한 장 남은 달력은 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대책 없이 책 욕심만 있어 사들이는 습관은 어쩔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옷이나 신발 등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있는 것은 버리고 가능한 사지 않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올해 못 읽은 책은 내년에도 못 읽기는 마찬가지다. 자꾸 읽고 싶은 신간이 쏟아지는데 밀쳐둔 묵은 책에 손이 가겠는가. 미니멀리즘 실천의 제 1의 덕목은 을 믿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읽겠지, 입겠지, 쓰겠지를 과감하게 잘라내면 실천할 수 있다. 가능한 사지 않고 나중 도서관 이용해야지 했다가 ..

네줄 冊 2021.12.12

찾아온 아이 - 김진규

찾아온 아이 - 김진규 그 먼 옛날 죄가 크면 발을 자르라 했다 그리하여 나는 발 없는 자의 무릎을 떠올린다 가장 낮은 자세로도 갈 수 없는 목소리 앞 왕의 광장이 넓게 펼쳐진다 그 먼 옛날 다툼이 있으니 가두라 했다 세상은 밤이 되고 밤은 피부가 되었다 깜깜한 배고픔 위로 뼛조각 같은 별이 부서졌다 먼 곳에서 지켜보는 왕의 관음을 생각한다 보이지 않던 죄가 왕에게 가면 거울처럼 빛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왕을 훔치고 싶었다 굽혀지지 않는 무릎을 가지고 싶었다 바퀴로 세상을 밀어내던 시절에 걷지 못해 낮은 자세로 기어다니던 날들 죄를 짓지 않았는데, 그랬던 것 같은데 내 다리에 모르는 별들이 한참을 돌아나갔다 그 먼 옛날 거짓을 말하면 혀를 태웠다 부모를 위로하면 그 밤엔 혀가 타들어갔다 왕의 혀는 가..

한줄 詩 20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