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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감정은 재현되지 않는다 - 이명선

흙의 감정은 재현되지 않는다 - 이명선 견디고 싶어서 한 사람의 고백을 듣기 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비를 기다리며 둥글어지는 땅의 체취처럼 장미가 붉어질수록 우리의 언어가 사라지는 것처럼 어떤 고백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바라볼수록 침묵이 되어 돌아왔다 신열에 시달리는 당신의 독백을 짚어 보다가 우리는 뒤돌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헤어지는 날이 많았다 미안한 표정을 짓는 당신의 영혼에 비가 비친다 알약을 녹이는 입 안에서 기도 소리를 들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았다 그 눈동자 속을 한 옥타브씩 오르다 흙의 감정을 밟고 오른다는 미안함에 나는 흩어지고 하루가 하루를 다독이고 있는 건 부서지는 흙의 감정을 그러모으는 일 잘 배운 이별이 시야를 흐릴수록 꽃을 편애했던 당신..

한줄 詩 2022.08.21

이쪽저쪽 - 김석일

이쪽저쪽 - 김석일 자신의 나이는 까맣게 까먹고 죽음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참 철없는 중늙은이들이 욕심 꿈틀대는 희망을 나눈다 아파트값이 더 오를 것 같다고 고향 선산이 개발될 것 같다고 수입 영양제가 정말 좋은 것 같다고 못마땅한 친구가 삐딱하게 한마디 했다 — 야 그래봤자 십 년 이쪽저쪽이야 짜샤 의아하게 쳐다보는 화상들에게 덧붙였다 — 십 년 이쪽이면 80이고 저쪽이면 90이야 헛소리들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살아 십 년을 앞뒤로 헤아려보던 중늙은이들 멀뚱멀뚱 뿌연 눈동자를 굴린다 *시집/ 울컥하다는 말/ 북인 상처가 된 말 7 - 김석일 — 아무래도 나는 고독사를 하겠지! 슬픈 표정의 자조섞인 그의 말을 그냥 듣기만 하면 좋았을 걸 — 그럼 너 죽으면 호상이라도 치를 줄 알았냐? 술김에 농처럼 툭..

한줄 詩 2022.08.21

방향이 다를 뿐 - 이윤승

방향이 다를 뿐 - 이윤승 오래 씹을수록 좋다고 한다 좋은 침을 만들기 위해선 잘 씹어야 한다 씹지 않으면 이빨의 기능이 약화될 수도 있으니까 바람 불어와 나뭇잎 흔들린다 하고 싶은 말 꼭 해야 하는 친절한 당신 옆에서 흔들린다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려서 소처럼 되새김할 수 있는 네 개의 위장이 없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책을 보고 있다 씹을수록 건강해진다는 너머로 걸어간다 너머가 알 수 없어질 때마다 시작이 반이면 반은 읽은 것이라고 커피가 달지 않고 적당히 맛있다고 감정 빼고 말한다 뱉어내는 타액이 약이 될 때도 있지만 독이 되기 십상이어서 제대로 알고 적당히 씹어야 하고 씹을 걸 제대로 씹어야 한다 친절하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틀고 흰 구름이 안면에 홍조를 띠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발걸음을 떼며..

한줄 詩 2022.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