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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노동 - 이용훈

미안한 노동 - 이용훈 흙가마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불쏘기개로서 한낮의 대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불사르고 활활 타올랐던 사람들 새까맣게 타버린 몸을 이끌고 복도를 걷습니다 호이스트 승강기 안에서 화강석을 들고 있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21층으로 아니면 더 높이 올라가는 덜컹덜컹 무심하게 올라가는 동안 오로지 당신이 들어갈 곳의 크기와 오차 치수만을 고민하는 당신의 몸이 적당한 크기로 절단되고 무탈하게 놓이기만을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끈한 열기가 응어리져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사람 몽고 사람 때로는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무리 지어 어두컴컴한 모텔 복도를 이리저리 걷습니다 당신들은 타월을 충분히 달라는 요구도 시원한 물이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는지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합니다 세워지는 모든 존재들은 ..

한줄 詩 2022.08.26

사랑한 만큼 보여요 - 박노해

사랑한 만큼 보여요 - 박노해 사람은 그래요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이기 불가능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나쁜 사람이기도 불가능하죠 사람은 그래요 모든 점에서 훌륭하기 힘든 것처럼 모든 점에서 형편없기도 힘들지요 사람은 그래요 인생 내내 잘나가기 어려운 것처럼 인생 내내 헤매기도 정말 어렵지요 사람은 고정체가 아닌 생성체이니까요 지금 여기서 보는 그가 아니라 그의 전체를 보아야만 그가 보이지요 사람은, 사랑하면 보이지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지요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다 공짜다 - 박노해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고 힘주어 말하는 자들은 똑똑한 바보들이다 인생에서 정말로 좋은 것은 다 공짜다 아침 햇살도 푸른 하늘도 맑은 공기도 숲길을 걷는 것도 아장아장 아이들 뛰노..

한줄 詩 2022.08.26

밤은 불안해서 - 류흔

밤은 불안해서 - 류흔 낮에 관해서는 나는 거의 감동이 없고 방관하는데, 다만 나는 나의 밤을 괴롭힌다 창문을 열면 문틀에 앉아있는 달빛과 가파르게 넘나드는 바람에게 무언가 연신 묻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끄떡인다 건넌방에는 아내가 이불을 걷어찬 채 가릉 가릉거리며 잠들어있다 반면에 나의 애인들은 전부 잠 못 들고 내가 유부남인 사실에 몹시 불안할 테지 불안해하다 화가 날 거야 그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스크럼을 짜서 나를 손봐주러 맹렬히 돌진한다, 이것은 어젯밤 내가 꾼 꿈 오늘은 밤을 대하는 태도가 신중하니 그런 흉몽은 없어야 한다 다시 그런 꿈을 꾼다면 11층에서 완강기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갈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 *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어느 때에는 - 류흔 또..

한줄 詩 2022.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