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뒤 나그네들 - 홍신선 영락없이 일모도원(日暮途遠) 황망한 나그네의 몰골이다. 처서 지나 뭇풀들이 색을 바꾼 궂은 잎 몇몇 매달고 갓 난 몸 겨드랑이에다 손톱만 한 꽃을 감추거나 이삭들 목을 뽑아 올린다. 이 얼마나 앙증맞은 절망의 기색들인지. 아니다. 이 얼마나 번식욕이 마려운 진지한 얼굴들인지. 차마 저들을 어찌할 수 없어 나는 왼종일 터앝에 와서 귀청 해진 내 귓때기나 내려놓는다 가승(家乘)에 무후(無後)다란 기록 한 줄 지우고 뭉개기 위해 인간도 생명에 된힘에 된힘을 더하지 않는가. 목숨붙이들 누구나 뒷날 세대를 노둣돌 삼아 시간의 텅 빈 통로를 뚜벅뚜벅 걷거나 건너뛰어 영원에 당도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 무한 미래를 위해 영근 종자들 속 어딘가 오고 있는 풋내기 나그네들 발소리를 오늘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