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지나고 며칠 이따 - 한명희 시루떡 같은 바위가 부르르 몸을 떤다 안개가 단번에 걷히고 두 개 나이 든 여자의 젖가슴 같은 능선 앞에서 머리카락 쭈뼛, 선 나는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일 삼아 먹고 있었는데 가시 돋친 침엽수 사이로 솟은 해가 바위 밑에 연신 불을 지피고 있었다 또 어떤 날엔 바위가 공원 한쪽 부서진 짱돌처럼 날아다녀서 놀란 눈퉁이는 숨을 곳을 찾는 길고양이가 되고 발톱 빠진 발등은 끈 떨어진 신발 속에 젖어 있고 또 어떤 날은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는 척 학교 가는 아이들과 현관문을 나서는데 옷 갈아입느라 두고 나온 해고통지서가 생각나서 처서 지나고 며칠 이따 고사떡을 돌리던 어머니의 손으로 아버지가 불이 나도록 뺨을 때리고 있었다 *시집/ 아껴 둔 잠 / 천년의시작 룰렛 - 한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