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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 우혁

목구멍 - 우혁 세상의 모든 병(甁)에서는 비슷한 맛이 난다 차마 울 수도 없던 묵직한 것이 가래처럼 버티고 있다 그들은 영혼이 목구멍 속에 있다고 믿었다 마음은 목구멍 속에서 기도와 식도를 넘나들고 침을 삼킬 때 울컥하고 밀려오는 건 너의 오래된 슬픔 고삽(固澁)의 모양새대로 넌 울 때조차도 목구멍을 벗어날 수 없어 먼지 맛이 나는 어제 우린 늙는다 허나 줄어들지 않는다 그 반복, 나는 분명 너라고 하나밖에 없는 목구멍으로 발화한다 타들어가는 말은 경계에서만 뜨겁다 나의 존재가 시간과 반비례 관계는 아니란 거 어쩜 우린 지독한 영생을 누릴지도 모른다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발바닥 - 우혁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꽃은 피고 지고 더 이상 머무르지 마라 길은 나를 알고 있었고 나는 모든 길 ..

한줄 詩 2021.12.31

오고 또 오는 - 이은심

오고 또 오는 - 이은심 우주의 질량은 변함이 없다니 먼지의 총량을 쓰윽 닦아내는 무릎의 수고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울음도 가만 두면 썩을 것인가 번번이 옳은 청소도구와 올바른 물걸레가 첫눈 같은 얼굴로 쓸어내는 오고 또 오는 불화의 장르들 내 지옥도 조금씩 버리면 덜 아팠을지 몰라 수박은 씨를 아무 데나 뱉는다 어디서든 불어닥치는 생이 앞치마를 벗어 터는 곤한 저녁에 안주인이란 식후에 창문을 넓게 열고 새 수건을 갈아주는 사람 물로서 물을 씻어 먹는 결벽증은 밖을 묻히고 오는 강아지를 하얗게 빨아 널 텐데 시계가 시간을 떨어뜨린 곳 싸리꽃 흰 빛 다투던 곳 헛되고 헛되니 나는 발작적인 결백에 전염되었는지도 모르는 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든 훌훌 사라진 다음이란 마음껏 닦아 세운들 꽃바람일 리 ..

한줄 詩 2021.12.30

당부 - 김용태

당부 - 김용태 오래 전 사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등에 걸린 책보가 위태롭구나 밀린 육성회비를 채근하던 선생님, 궁핍한 생활도 체념하듯 원망 않던 순한 아이야 물려받은 크레용으로 회색 하늘을 그려야 했던, 너는 다행히도 아직은 허리 굽은 부모를 가졌구나 오늘은 고단한 너를 위해 먼 훗날 네 여자를 시켜 변변치 않은 찬이나마 더운 밥을 준비 하마 철없는 새끼들 가꾸며 힘써 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만 겨우 허기 달래 줄 살림으로 저녁상을 마주했구나 그렇게 뒷날 네가 나를 살 때 어려 그렸던 꿈마저 펼쳐 주지 못한 채 이 모습으로 너를 맞게 되었으니 염치없는 일이다만 내민 손을 잡아다오 두려워하지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며 운명인 양 걸어서 와 다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나이테에 ..

한줄 詩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