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충무로 인쇄골목 - 전장석 첫눈이 왔을 뿐인데 쇄출기가 고양이 발걸음처럼 느릿느릿해지고 첫눈이 왔을 뿐인데 갑자기 허기가 져 순댓국에 소주를 시킨다 어쩌다 첫눈이 왔을 뿐인데 흐린 창밖엔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오래 서성이고 첫눈이 오자 인쇄골목 사람들은 그동안 망설이던 기차를 타고 고향의 설원을 향해 달리는 꿈을 꾼다 늙은 쇄출기가 밤새 콜록이던 골목골목에 아픈 상처를 더듬듯 눈은 낡은 입간판을 어루만지고 천막 위에 흰 천막을 덮는다 그곳에 맨 처음인 듯 쓰여진 눈의 마지막 문장에다 마침표를 찍으려 들뜬 사람들의 분명한 발자국이 지워지고 다시 찍히고 있다 어쩌다 첫눈이 왔을 뿐인데 늙은 암고양이 밤새 낡은 쇄출기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좌우 막힘없이 몸놀림 가볍던 지게차는 눈송이 하나에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