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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충무로 인쇄골목 - 전장석

눈 내리는 충무로 인쇄골목 - 전장석 첫눈이 왔을 뿐인데 쇄출기가 고양이 발걸음처럼 느릿느릿해지고 첫눈이 왔을 뿐인데 갑자기 허기가 져 순댓국에 소주를 시킨다 어쩌다 첫눈이 왔을 뿐인데 흐린 창밖엔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오래 서성이고 첫눈이 오자 인쇄골목 사람들은 그동안 망설이던 기차를 타고 고향의 설원을 향해 달리는 꿈을 꾼다 늙은 쇄출기가 밤새 콜록이던 골목골목에 아픈 상처를 더듬듯 눈은 낡은 입간판을 어루만지고 천막 위에 흰 천막을 덮는다 그곳에 맨 처음인 듯 쓰여진 눈의 마지막 문장에다 마침표를 찍으려 들뜬 사람들의 분명한 발자국이 지워지고 다시 찍히고 있다 어쩌다 첫눈이 왔을 뿐인데 늙은 암고양이 밤새 낡은 쇄출기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좌우 막힘없이 몸놀림 가볍던 지게차는 눈송이 하나에도 무..

한줄 詩 2022.01.02

바닥이라는 말 - 이현승

바닥이라는 말 - 이현승 우리들의 인내심이 끝난 곳. 사는 게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은 하늘을 본다. 별 볼 일도 없는 삶이라서 별이라도 보는 일이 은전처럼 베풀어지는 거겠지만 사람이란 후회의 편에서 만들어지고 기도의 편에서 완성된다고 할까. 부드럽게 호소해도 악착스러움이 느껴지는. 그 많은 간구의 눈빛과 목소리를 신은 어떻게 다 감당하고 있는 걸까. 콩나물처럼 자라 올라오는 기도들 중에서 제 소원은요 다른 사람 소원 다 들어주고 나서 들어주세요. 하는 물러 빠진 소원도 없지는 않겠지만.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선 곳 그러니까 풍문과 추문을 지나 포기와 기도를 지나 개양귀비 뺨을 어르며 불어오는 바람이 가까운 진흙탕 위로 내려앉는 것을 본다. 아무리 맑은 우물이라도 바닥사정은 비슷하다. 그러..

한줄 詩 2022.01.02

잘 가라, 나쁜 년

# 참으로 징글징글한 코로나 시국이다. 난데 없는 전염병으로 일상이 망가진 지 어느덧 2년이 다 돼간다. 처음엔 몇 달 고생하면 괜찮아지겠지 했다. 그 암흑 같은 1년이 지나고 2021년, 올해는 괜찮아질 거야 기대를 했다. 그러기를 또 다시 1년을 보태 2년이다. 이렇게 길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며칠 전, 세 번째 백신 주사를 맞았다. 일명 부스터 샷이라는 3차 접종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2차 맞은 지 딱 90일 째에 맞았다. 다행히 여태 코로나 안 걸리고 지나왔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2년 동안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질 못했다. 떠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오죽하겠는가. 목줄 없이 풀어 놓고 자란 강아지가 목줄 못 견디는 것처럼 말이다. 11월 들어 시행한 위드 코..

열줄 哀 202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