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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들판에서 - 박남원

눈오는 들판에서 - 박남원 이승에서 살다 살다 해탈까진 못하더라도 먼지 때 묻은 마음밭 열심히 쟁기질하여 갈고 닦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눈 내려 수심 깊은 들길 한줄기. 우물물 길어 올리듯 세상 하나 길어 올리며 결국,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에게 가는 길. 가도 가도 길 아닌 길 위에서 길조차 눈이 되어 흩날리는데, 그대는 어느 심연의 바닷가에서 눈 내리듯 어디쯤 오고 있는가. *시집/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어느 날/ 도서출판 b 소한 추위 - 박남원 소한 추위에도 인부들은 인력사무실 기름 난롯가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피곤함과 초조함이 날실처럼 교차하는 이른 새벽. 얼룩진 페인트 벽 위로 흐릿한 형광 불빛은 밤 거미처럼 기어 다니고 연장 가방에 담긴 하루치의 연명은 한겨울 날파리처럼 가볍다. 기..

한줄 詩 2022.01.06

유시민 스토리 - 이경식

유시민이 쓴 책뿐 아니라 유시민이란 이름이 들어간 책은 가능한 읽으려 한다. 심지어 반대편 사람이 쓴 유시민을 비판하는 책도 읽는다. 한 사람에 꽂히면 그가 들어간 모든 매체를 탐닉하는 습관이 있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가 가슴에 들어오면 그 시인의 이전 글을 빠짐없이 찾아 읽는 편이다. 지독한 활자 중독자이기도 하지만 대충 읽기보다 철저하게 읽으려고 한다. 아마도 리영희, 신영복 선생과 함께 유시민도 나를 중독시키는 저자다. 그의 책이 어렵지 않게 읽히면서도 어디 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이경식이 쓴 유시민 평전이랄까. 아직 평전을 쓰기에는 유시민의 일생이 창창하지만 그래도 유시민이 걸어온 길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한 사람의 일생을 책 한 권으로 정의할 수는..

네줄 冊 2022.01.06

마침내 - 천양희

마침내 - 천양희 아침 바람은 가로등에 스치고 눈 내리는 날엔 풍경이 풍경을 본뜨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고 매일 실패하며 살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젊음은 제멋대로 왔다가 조금씩 물러나고 우리의 찬란이 세상 모르고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에도 벽이 있고 생각에도 동굴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닫고 살기보다 열어놓고 살기란 더 강력한 삶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은 살 만한 곳인가 묻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때 마음에도 야생지대가 있군, 중얼거리며 내가 마침내 할 일은 죽기 살기로 세상을 그리워해보는 것이다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사소한 한마디 - 천양희 1920년 뉴욕의 어느 추운 겨울날 가난한 한 노인이 “나는 맹인입니다.” 잭은 팻말을 들고 공원 앞에서 구걸하고 있..

한줄 詩 202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