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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예의 - 김승강

음식에 대한 예의 - 김승강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좀스럽다 하겠지요 바닥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는 개미도 먹고 진드기도 먹는다고 하셨죠 잔반은 개도 먹고 돼지도 먹는다고도 하셨지요 저는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버려지는 음식이 아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버려지는 음식이 안타까워요 버림받는다는 건 안쓰러운 일이죠 내가 거두고 싶어요 고아를 입양하듯이 버리려면 나에게 버려주세요 내 위가 음식물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내 몸이 음식의 고아원이 되어도 상관없어요 상한 음식이 아니라면 저를 주세요 음식은 음식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 음식인 거겠죠 그들의 역할이 다하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그게 나를 살게 하고 우리를 식구이게 한다고 봅니다 *시집/ 회를 먹던 가족..

한줄 詩 2022.01.03

꽃별 지다 - 김남권

꽃별 지다 - 김남권 한 사내가 죽었다 종각역 4번 출구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보신각 뒷골목에서 가로 육십 센티 세로 백육십 센티 빈 박스 속에서 마른 새우처럼, 최초로 엄마의 바다를 헤엄칠 때처럼, 잔뜩 웅크린 채 굳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하게 그 앞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그를 조문하지 않았다 또 다른 노숙자가 다가와 그의 안부를 물었고 곧이어 구급차가 나타나 그를 싣고 갔다 아무도 울지 않았고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삼십 년 전 종묘광장 벤치 위에서 잠을 청하고 서울역과 청계천 빌딩 숲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던 순간에도, 달방호의 차가운 물길 속을 걸어 들어가던 순간에도 그랬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저물어가도 되는 것일까? 조문도 없는 길 위에서 작은 우주 하나가 소멸하고 다시 새..

한줄 詩 2022.01.03

어른이 되기 위한 망각

*세련되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 안면으로 일을 들이밀 때는 일단 생각해 본 다음 메일로 답을 드리겠다거나, 상사가 당직을 바꾸자고 할 때를 대비한 적당한 핑곗거리 정도는 만들어 둬야지. 곁들어 말한다면,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경험에 비춰보건데 시작하지 않는 게 좋아. 일도 그르치고 인간관계도 불편해질 뿐이지. 기억해 둬. 거절을 잘하면 인생이 두 배는 편해진다는 것을, 가끔 인생은 결코 착하지 않은 나와 끝까지 착하게 보이려고 하는 나와의 끝없는 싸움이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최갑수의 책 에서 발췌 # 한 살 더 먹었네. 언젠가부터 이 말이 불편해졌다. 어릴 때는 어떻게 하면 빨리 한 살 더 먹고 어른이 될까 했다. 아마도 서른 살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열줄 哀 202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