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떠나는 나를 보내는 일 - 김재덕
어금니 하나를 또 뽑았습니다.
오래 흔들리던 놈
아프게 버티다 슬그머니 뿌리를 놓더군요.
지난 몇 년
열 몇 개 시간이 뽑히고 볼트가 박혔습니다.
지나간 사랑처럼 몇몇의 내가 가고
녹슬지 않는 타인이 나를 지키는 셈이지요.
어금니들은 내 손으로 다 뽑았습니다.
아픔을 진통제로 달래고
기다리다 제 발로 일어설 때 헤어졌지요.
헤어지니 아픔도 사라졌지만
떠난 자리는 늘 깊더군요.
오래 참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싶었습니다.
작약 몇 송이 저뭅니다.
붉은 잎 이지러지고 발 아래 먼저 떠난 봄들 낭자하네요.
다들 그렇게 떠나나 봅니다.
단단한 것들을 앞세워 보내며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갑니다.
먼저 떠난 것들이 조금씩 떠나오는 나를 보겠죠.
단단한 눈빛으로.
떠나는 일이란 결국
참는 일이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시집/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 곰곰나루
이명 - 김재덕
그녀는 객관적이지 않아요
당신은 듣고 있지만
그녀는 날카롭게 우는 침묵일 뿐입니다.
어제는 종일
오늘을 가끔
그녀를 듣는 당신.
당신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해요.
그녀라는 음원은 없어요.
아주 좁은 통로에서 잃어버린
몇 마디 기억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라진 시간이 공명하는 소리
그림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문득 잊을 때도 있지요.
순간 그녀는 온전히 침묵합니다.
망각이 처방일까요?
그래서 어려워요.
당신이 당신을 잊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깊은 곳에서 부르는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당신입니다.
당신이 지르는 그녀의 비명
그녀는 당신입니다.
도무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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