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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와불 - 윤향기

늦여름, 와불 - 윤향기 이른 아침, 방충망 바깥은 타고 남은 진신사리 화장터 푸드득! 푸드득! 도주할 전도도 탈출구도 없이 죽음을 향해 비행 포스로 돌진한 열혈 사내의 최후는 차갑고 단단하다 무모하게 암술을 탐하느라 짧은 행성의 하루를 눈부신 불꽃에 후회 없이 던졌다 그는 한 생애의 남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튼 것일까 북쪽을 향한 아미(蛾眉)의 남쪽은 어디일까 불에 탄 날개로 무릎 꿇은 불나방 말복 지나 추운 몸뚱이 하나가 와불로 누워 있다 *시집/ 순록 썰매를 탄 북극 여행자/ 천년의시작 서우(暑雨), 다크 투어 - 윤향기 후쿠오카 형무소 뒷담에 서시를 널어놓고 흐려지는 새들의 발자국을 널어놓고 자화상의 울음을 말린다 패 경 옥 기별을 개켜 놓은 제단에 긴 다리를 쭉 피며 눕는 백골 후두둑 빗방울이 ..

한줄 詩 2022.08.29

안부 총량의 법칙 - 성은주

안부 총량의 법칙 - 성은주 인사는 인사를 끌어당기고 입의 나라에서 덜 익은 안부가 오간다 가끔, 입의 나라에 끌려가 맛없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가 있다 안녕은 안녕으로 둥둥 떠다니고 잘 지내는 잘 지내로 싱겁게 간을 맞춘다 괜찮아는 괜찮아로 딱딱하게 뭉친다 안부를 전할 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끌려오거나 끌려가거나 슬픔 없는 애도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하루에 쓸 안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안부가 길어지면 어려운 부탁이 따라온다 입에서 입으로 연주하듯 걸어 다닌다 안부가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그럴 리가 있다로, 잘 돼 간다는 잘 될 리 없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마음에 드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목소리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이 쉽게 빠지지 않는 것처럼..

한줄 詩 2022.08.29

그래도 우리는 - 변홍철

그래도 우리는 - 변홍철 역류성식도염, 불면증 치통과 가려움증, 몇 개의 중독 우울과 도착, 망상과 관음증들 그 얼굴이라고 해서 온기가 없으란 법은 없다 뻔뻔한 표정 뒤의 수치를 모를 리가 없다 괜찮다, 같이 살자 제자리를 지키며 이따금 서로 손등을 핥아주며 발바닥을 주물러주며 친구 몇은 더 데리고 와도 좋다 얇은 잔고를 아껴가며 밥을 나눠 먹자 내 남은 수명의 앞섶을 기꺼이 열어주마 그러니 지나가는 너희는 비웃지 말라 우리의 다정한 거처를 넘보니 말라 가령 내전의 검은 먼지가 나와 이 가련한 동거인들의 처마 위로 밀려올 때조차 발맞춘 행진곡과 폭죽 소리와 화약 냄새가 흰 구름의 커튼을 사납게 들출 때조차 여린 천의 바자울을 걷어차며 낡은 해와 죽은 별의 껍데기와 무딘 쇠붙이 신념들이 새겨진 깃발, 깃발..

한줄 詩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