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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하루를 먹는다 - 오광석

홀로 하루를 먹는다 - 오광석 아침에 일어나면 꺼내 먹는 바나나우유맛 밤마다 끓여 먹는 라면맛 홀로 창문에 매달리는 세상과 격리된 수감자 격리를 이겨내는 건 상자 모양 원룸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일 무수한 광고지만 불려 다니는 한산한 당산동 거리 입과 코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도망친다 바이러스가 엉겨 붙을라 흩어지는 사람들 어제가 복사되어 붙여진 오늘 특별한 것을 찾는데 손님 끊긴 문 앞에 앉은 식당 아저씨 올려다보며 짓는 눈웃음 마스크 속 가려진 속상함이 보인다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 무렵 하늘에 노란 눈 하나 떠 있다 다크서클처럼 깔린 노을 구름 눈썹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시집/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걷는사람 새들의 출근 - 오광석 이른 새벽 당산역 건널목 부지런히 일터로 향하는 비둘기는 볼록한 ..

한줄 詩 2022.01.20

시(詩) - 우대식

시(詩) - 우대식 음악 아닌 것으로 음악 하기 나인 것을 나 아닌 척하기 가을날 듣는 만가(輓歌) 겨울날 곁불을 옆에 두고 옹송거리며 마시는 낮술 사람은 거리를 두고 그림자 사랑하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기 그리워하다가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기 악다구니로 떼쓰며 울다가 아무 보는 이 없을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 옷 털기 꾀죄죄한 민낯으로 설산(雪山)에 대적하기 눈이 멀어도 먼 것을 모르고 형형색색 달콤하게 이야기하기 신을 실컷 조롱하다가 그 발아래 한없이 통곡하기 영원한 것이 있나요 이런 물음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 나그네처럼 우물가에 오래 앉아 있기 아주 오래도록 허공을 응시하다가 저 푸른 한 점으로 쑥 들어가기 *시집/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시(..

한줄 詩 2022.01.18

해당화 피는 마을 - 김용태

해당화 피는 마을 - 김용태 그저 술 좀 과하게 마신 기억밖에는 파도에 휩쓸려 솟구치다 떨어지기를 수차례 목이 타서 깨어보니 웬 낯선 방에 저 여자하고 내가 벗어 놓은 신발짝처럼 나란히 누워있더라고 짚이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꿈속 일 같기도 하고 차려 내온 아침상을 사이에 두고 저나 내나 내세울 것은커녕 그 뿌리조차도 알 수가 없어 감추고 싶은 지난 일들만 들추고 있었는데 힐끔힐끔 훔쳐보는 것이 아주 싫지 않는 눈치더라고 그 날 바로 '해당화' 간판부터 내리게 하고 장화 두 벌 장만하여 물이 들면 바다로 가고 물이 나면 뻘에 나가 사십 년을 버텼지 등기만 내 앞으로 안 해 놨다 뿐이지 그 때는 서해바다 전부가 내 것이었어 사랑? 아무리 근본 없는 갯것들이라고 저리 붉은 시절이 없었으려고 주렁주렁 대..

한줄 詩 2022.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