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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먹다 - 김주태

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먹다 - 김주태 몸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오르면 아침부터 단내가 났다 그런 날이면 목에 때 벗긴다고 단골집에 둘러앉았다 노릿하게 익은 돼지 살점에 허기가 밀려와 급하게 젓가락 들면 손가락이 굳어 젓가락질이 되지 않았다 왼손으로 오른 손가락 마디를 주무르고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을 풀어도 굳어진 손가락은 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퍼먹었는데 양파를 많이 넣었는지 알싸하게 눈이 매웠다 조적공과 철근이 내 눈을 훔쳐보고 눈물 바람이나 하는 줄 알았는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 판을 뜨라고 했다 골병이 몸에 박히면 빼내지 못한다고 하루빨리 접는 게 살길이라고 어서 이 판을 뜨라고 했다 *시집/ 사라지는 시간들/ 삶창 순대 골목 - 김주태 스무 살 ..

한줄 詩 2022.01.21

아이웨이웨이 전시회 - 인간 미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생기면서 전시회 나들이가 훨씬 수월해졌다. 동물원 가는 길 구석탱이에 숨어 있는 과천까지 가지 않고도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날들인가.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창궐하는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관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중국의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 전시다.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어로 艾未未(애미미)로 표기를 한다. 본명인지 예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름에는 "아직 결실을 맺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품고 있다. 이것은 내 해석이니 틀릴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전시회 제목이 인 것과 연관 시키니 그럴 듯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예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정치다. 그리고 예술은 반드시 승리한다." 아이웨이웨이가 늘 내세우는..

여덟 通 2022.01.20

눈, 이라는 세상 - 이윤설

눈, 이라는 세상 - 이윤설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눈은 퍼붓고 쌓이고 나는 얼굴을 바꾸지 못한 지 오래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지 오래 베개가 내 얼굴을 반쯤 파묻어버리도록 나는 사랑하지도 않는 당신이 내 생각을 하는 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은 지 오래 침대는 네 다리로 서 있거나 버티고 있거나 내 생각을 하지 않은 지 오래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의 숫자만큼 눈이 내리고 고드름처럼 얼어붙어가는 나의 침대는 삐걱이고 다시는 당신을 생각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퍼붓고 아우성치고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당신이 되어왔다는 걸 모르지 않은 지 오래 우리는 한밤중에 깨어나 당황하며 모르는 척 눈을 감은 체 발을 숨기고 속눈썹을 떤다 누가 지금 당신 생각을 하는가 우리는..

한줄 詩 20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