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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술집, 그 집의 술국 - 우혁

엄마의 술집, 그 집의 술국 - 우혁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밤이 깊고 입김이 거셀수록 겨울은 엄마 집에만 머무는 거 같았다 술 없이 밤을 견딜 수 없는 족속들 오로지 시키는 건 술국뿐 가끔 식은 밥을 말아대며 씩씩대는 김 씨는 국물을 삼킬 때만 사람이 됐다 식은 국물을 몇 번이고 다시 데우고 그때마다 내장이며 순대며 은근슬쩍 더 들어가는 덤덤한 덤은 엄마도 모르고 김 씨도 몰랐다 그러니 나도 모르고 꾸벅 조는 겨울이 더 슴슴한 맛을 내는 거였다 하나 아니면 둘 빨리 비우지도 못하는 잔이 자꾸 밤그림자를 게워내는 것 같았다 어느 유적지에서 오래 유물이 되고 싶었던 입맛이 몇 번 사람이 되곤 하는 밤이었다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불온한 몸 - 우혁 파도에서 네가 걸어 나왔다 몇 번의 화장(火葬)..

한줄 詩 2022.01.16

꿈꾸는 구둣방 - 아지오

옷은 조금 크거나 작아도 입을 수 있으나 신발은 곤란하다. 조금 작다 싶으면 발가락이 아프고 헐렁하면 양말이 벗겨지거나 뒷굼치에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다. 특정 저자를 내세우지 않고 구두 브랜드인 아지오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구둣방의 탄생 과정과 지향하는 바를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할까. 두 인물을 주죽으로 끌고 간다. 구둣방 대표인 유석영과 구두 장인 안승문이다. 구두점으로 성공해 돈을 번 소상공인의 성공담이었다면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돈을 밝히는 사람이지만 재테크나 성공담에 관심이 없다. 이 구둣방의 정식 사명은 이고 아지오(AGIO)는 수제화 상표다. ..

네줄 冊 2022.01.15

달가락지 - 육근상

달가락지 - 육근상 유품 정리하는데 흔한 금붙이 하나 나오지 않는다 자랑이라고는 웃을 때 살짝 보이는 어금니 금이빨이 전부였는데 그것도 몇 해 전 틀니로 갈아 끼워 오물오물 평박골 만드셨다 팔순에 손녀가 선물한 화장품도 새것으로 보아 바라만 보고 흡족해하셨나 보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하는 것 좋아하시더니 꽃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을까 귀퉁배기 깨진 밥그릇에 심은 꽃잔디가 마루까지 뻗어 있다 헌 옷가지며 먹다 남은 약봉지 태우다 물끄러미 장꽝 바라보니 남루를 기워 입어 한껏 차오른 달이 가락지인 양 고욤나무 빈 가지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무르팍에 얼마나 문질렀는지 반질반질하다 *시집/ 여우/ 솔출판사 여우 - 육근상 ​ 정월은 여우 출몰 잦은 달이라서 깊게 가라앉아 있다 저녁 참지 못한 대숲이 꼬리 흔들..

한줄 詩 202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