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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에게 말 걸기 - 김추인

미래의 나에게 말 걸기 - 김추인 -호모 커넥서스Homo Connexus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2040년쯤 그대는 나인가 나의 유사 종인가 황금비율 아니라도 낡고 삭아가는 대신 바꿔 끼운 관절과 치아 망막과 새 달팽이관으로 씽씽해진 그대를 봐봐 우리는 상상이 가는 대로 구현해 내는 호모 데우스 신의 격노가 도달치 않아 신의 역사를 대리하는 불안의 연대에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도 미래지만 허물고 파고 제동 장치 없이 내달리는 우리의 내일이 겁난단 말이지 봐봐 자연의 불호령이 시작된 게야 벌레도 아닌 균사도 아닌 것이 알은 알인데 쥐뿔도 없는 것이 무수히 뿔난 알이라니 쯧, 놈은 기척도 없이 행성을 꽁꽁 묶는구나 함부로 나대던 나를 너를 격리 시키는구나 유령도시만 같은 텅 빈 거리의 적막 가운데 하늘 맑아지..

한줄 詩 2022.01.15

훌륭한 불행 - 박지웅

훌륭한 불행 - 박지웅 ​ 당신이 보내준 절벽 잘 받았어요 어떤 편지는 아찔하거든요 특히 마지막 줄은 기막히게 좋았어요 그 끝에 부들거리며 서 있다 밑으로 고꾸라지는 꿈을 꾸게 되었거든요 그곳에서 누군가 바위로 눌러놓은 봄을 보았어요 동고비 한 마리 깃 비비고 간 그늘에서 천둥소리가 태어나고 그 찢어진 틈으로 빗줄기들을 수레에 싣고 서쪽으로 다 옮기면 장마가 끝나겠지요 청춘은 성냥개비 같은 어깨를 가졌지요 스치는 대로 불이 붙는 곳이었지요 손짓 한번 조심스럽던 날들 이토록 감싸는 건 내게 당신이라는 훌륭한 불행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서쪽을 다 지나온 절벽들이 멈추어 선 곳 찢어 날린 편지가 저녁이 되건 눈보라가 되건 나는 몰라요 *시집/ 나비가면/ 문학동네 가끔 타지 않은 편지가 - 박지웅 산 자들이 쓰다..

한줄 詩 2022.01.12

자술서, 허리춤에서 꺼낸 한끗의 무게 - 송병호

자술서, 허리춤에서 꺼낸 한끗의 무게 - 송병호 목양실, 에어컨 실외기 커버 씌우다 얼핏 눈이 와도 올지 않을 빈집을 본다 성명 위 낙관처럼 각인된 故 질식사 사망 시간을 알 수 없는 끝내 깨지 못해 화석이 된 사란(死卵) 꼬리 긴 둥지 밟힐까 울음도 울 수 없었을 불법 입주 언제 비웠는지, 고요만 슳다 한 해 농사 놓친 힘듬이 느껴오는, 가까워서 너무 먼 빛과 어둠 사이 열대야 불면은 발등만 훑고 갔을 것이다 먹이사슬 윗선 고등의 무례, 피차 生의 平 같은데 여린 빗물로는 씻기지 않을 시월의 바람은 삭연하다 그때 나는 어디서 무엇으로 절반만 사랑하다가 꼭 마지막에서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침묵에 드는지 언젠가 헤쳐 갈 무풍의 돛이면 좋겠다 명년, 흙이 새살 돋는 잔설 몽진 다 털어내고 봄꽃 필 무렵 ..

한줄 詩 202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