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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을 존중하라 - 정덕재

오뎅을 존중하라 - 정덕재 -시장 안에서 선거운동 금지 선거운동 기간에 오뎅 꼬치를 들고 사진을 찍지 마라 오뎅은 촬영용 소품이 아니다 뜨거운 국물 통에서 온몸이 불어터지도록 적셔진 오뎅은 학교 앞 조잘대는 아이들 간식 가득 따른 소주를 털어 넣고 한입 베어 무는 조촐한 안주 왁자지껄 점심도시락 빠지지 않던 단골반찬이다 생활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오뎅을 어느 한 순간 사진 속 값싼 모델로 등장시켜 수모를 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오뎅 들고 사진을 찍지 말아라 오뎅은 당신의 소품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준 따뜻한 위안이었다 사거리 모퉁이 학교 앞 문구점 골목 전봇대에 기댄 리어커 세상 어디에도 수모를 받아야 할 오뎅은 없다 *시집/ 대통령은 굽은 길에 서라/ 스토리밥 검새의 날개 - 정덕재..

한줄 詩 2022.01.26

얼음잠을 자고 - 이현승

얼음잠을 자고 - 이현승 백 년 뒤에 깨어나기 위해 얼음잠을 자는 사람처럼 우리에게 버거웠던 건 늘 미래가 아니다. 지금 고칠 수 없는 병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언제나 당대가 문제이고 당대는 문제인 한에서만 당대인 것이다. 질문은 여전하다. 새로운 몸을 받아도 백 년 전의 영혼으로 백 년의 고독과 그보다 더 무거운 상실을 견디면서 물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은 여전할 것이다. 두리번거리는 나의 버릇을 아무리 밀어내도 고여오는 불안과 우울을 어떤 것도 다 가능해지는 환멸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땅과 죽음이 지금의 증언자이다. ADHD와 조현병과 사이코패스가 시대정신인 것처럼. 나는 누구일까? 대답은 욕망에게 들어야 하고, 유감스럽게도 내가 누구인지는 포털과 유튜브..

한줄 詩 2022.01.25

새 한 마리 날아와 - 김정미

새 한 마리 날아와 - 김정미 지독하게 먼 허공과 콘크리트 바닥을 오르내리는 새를 본다 단 하나의 표정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사는 새들은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도 추락을 상상하지 않는다 나도 어쩌면 무심히 창밖에 있을 것이다 가능한 한 어떤 시절을 떠올리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친구가 오래된 의자를 잃었다 상실이 익숙해지는 동안 추락은 계속될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텅 빈 버스를 그냥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때쯤 친구는 새 의자를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새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때마다 추락과 비상을 떠올렸다 죽는 것도 결국 사는 일이라는 새들의 말을 한 줌씩 모으는 늦은 저녁이 젖는다 *시집/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상상인 마지막 페이지에 - 김정미 나는 엎질러졌다 겨울이 자작나무를 끌어안고..

한줄 詩 202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