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홀로 하루를 먹는다 - 오광석

마루안 2022. 1. 20. 21:30

 

 

홀로 하루를 먹는다 - 오광석

 

 

아침에 일어나면 꺼내 먹는 바나나우유맛

밤마다 끓여 먹는 라면맛

 

홀로 창문에 매달리는

세상과 격리된 수감자

격리를 이겨내는 건

상자 모양 원룸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일

 

무수한 광고지만 불려 다니는

한산한 당산동 거리

입과 코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도망친다

바이러스가 엉겨 붙을라

흩어지는 사람들

 

어제가 복사되어 붙여진 오늘

특별한 것을 찾는데

손님 끊긴 문 앞에 앉은 식당 아저씨

올려다보며 짓는 눈웃음

마스크 속 가려진 속상함이 보인다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 무렵

하늘에 노란 눈 하나 떠 있다

다크서클처럼 깔린 노을

구름 눈썹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시집/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걷는사람

 

 

 

 

 

 

새들의 출근 - 오광석

 

 

이른 새벽 당산역 건널목

부지런히 일터로 향하는 비둘기는

볼록한 배를 내밀고

머리를 좌우로 돌려 보며

급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지각 출근이야

늦으면 먹이가 줄어드는 일당직

조급한 그는 동동거린다

늘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휩쓸려 가는 삶은

뒤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아

안타까움으로 배 채우며 살아가는

도시의 비둘기들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는

지난 삶의 증거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어이구 어이구 소리 내며 동동거린다

지방에서 날아 올라온 나는

텃새들의 아침 출근 경쟁에서

한 걸음 뒤로 빠진 채

세상 둘도 없이 느긋한 폼으로

건널목 신호를 기다린다

 

 

 

 

# 오광석 시인은 제주 출생으로 2014년 <문예바다>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이계견문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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