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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 - 김수우

비탈 - 김수우 미끄럽다 찢어진다 평지에 서보지 못한 발목들이 엎어진다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수평선을 넘어간다 동서남북에 산불이다 몇달씩 타오른다 미얀마 청년들은 암흑과 싸우는 중이다 피가 터진다 거북이 배 속에 구겨진 패트병이 가득하다 빙하가 허물어진다 폭우와 폭염과 돌풍과 가뭄, 저 순서가 없는 불화들 고압선마다 걸린 무수한 갈고랑이들 창문을 깨뜨리던 무수한 돋보기 현미경들 우리 안의 가파른 사선은 읽지 못했다 짐승의 내장을 닮은 천민 자본은 비탈을 오르려 발악이다 평민 희망은 비탈을 잡고 바동거린다 원래 비탈이었던 가난은 잘 미끄러진다 물길을 낸다 흔쾌하다 하루가 된다 허공에 놓인 저 사다리 한참 더 내려가야 한다 궤도가 멈추는데 어떤 수태를 기억하는가 야생 쑥 무더기로 쏟아지는 봄, 봄이 미끄러진..

한줄 詩 2022.01.28

주름에 경배한다 - 김일태

주름에 경배한다 - 김일태 주름졌다는 것은 기운 빠졌다는 게 아니다 나를 접었다는 것이다 나를 내어주면서 너를 편안히 받아들일 힘이 쌓였다는 것이다 오냐오냐 한마디로 투정 철부지 짓 다 받아주시던 어머니의 포근함은 주름의 힘이었다 뒷산 소나무가 바람을 견뎌낸 것 다 주름의 힘이었다 주름을 만든다는 것은 나를 버려 너를 버는 일이다 하늘과 다투지 않는 요령으로 농투성이들이 논밭에 이랑과 고랑을 짓듯이 주름에 경배하라 *시집/ 주름의 힘/ 시선사 동지(冬至) 건너 동지(同志) - 김일태 동지쯤이었던가 밝음은 짧고 어둠은 까마득하던 그때 동지로 다가와서 내 안의 석등의 되어 삼동의 절망과 희망을 까무락 까무락 하, 서른일곱 번이나 달고 짜게 건너와서 다시 한번 맞이하는 삼동의 들머리 이제는 떨 일도 없는데 큰..

한줄 詩 2022.01.27

그리하여 아주 사소하게 나는 - 박남원

그리하여 아주 사소하게 나는 - 박남원 내 인생은 그랬다. 대개는 남 위해 차려진 밥상머리에나 두리번거리다가 파장이 되면 군중처럼 지나간 유흥의 뒤끝으로 걸어 나와 쓸쓸히 혼자 저문 골목길 걸어 돌아오곤 했다. 욕망이 가리킨 자리, 숲은 언제나 무성하였으나 대개는 볕 드는 쪽으로 세상 나무들은 향하고 있었고 바람조차 흐르기 좋은 제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인간의 높낮이보다 옳고 그름이 내게는 항상 그리웠으나 그럴 때마다 저무는 저녁노을을 홀로 바라보거나 가끔은 조금 남아있는 희망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애써 바라보곤 했다. 대개는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뿐이다.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의 애틋한 호명 한 번 받은 적 없고 만인 중의 사소한 어느 하나가 되어 삶의 고갯마루 힘겹게 넘어왔을 뿐이다. 언제였던가. ..

한줄 詩 202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