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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조금 먼 곳 - 심재휘

주문진, 조금 먼 곳 - 심재휘 강릉여고 근처에 모여 동기들이 자취나 하숙을 할 때 그녀는 이른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매일 통학을 했다 시내의 머스마들이 주문진 출신을 두고 나릿가라고 놀리던 날이 있었다 강릉과 주문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 세월을 따라 어떤 곳은 더 멀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가까워져기도 했는데 명주군 주문진읍이 지금은 강릉시 주문진읍이 되어서 닿을 듯 닿지 않던 조금 먼 곳이 사라져버렸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은 아주 먼 곳 조금은 멀고 조금만 가까워서 닿을 수 없는 곳 머리에서 바다 냄새가 나던 그 여고생은 말 한마디 못 붙여본 그녀는 가물거리는 그날의 주문진 조금 먼 곳이고 먼 곳과 가까운 곳만 남은 이제는 조금 먼 사랑은 사라졌다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

한줄 詩 2022.02.12

유행가들 - 김형수

시인 김형수가 쓴 유행가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는 1959년에 출생했기에 한국 유행가의 흐름을 제대로 경함한 세대다. 그러고 보니 1959년에 태어난 시인들이 참 많다. 베이비 붐 세대이긴 해도 유독 눈에 많이 띈다. 1958년 생인 누나 말에 의하면 한 교실에 70명쯤 되었다나? 유시민도 1959년 생이다. 구정을 전후해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몇 권의 책과 시집을 읽었다. 밀린 숙제 하듯 미뤘던 책을 읽을 수 있는 연휴가 소중하기 그지 없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책 속에 언급된 노래를 찾아 듣느라 무척 더디다. 궁금한 것 그냥 못 지나치는 편이라 더욱 그렇다. 비교적 뽕짝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처음 듣는 노래도 있다. 유행가 역사에서 한국 생활..

네줄 冊 2022.02.12

방이거나 관이거나

입춘 지난 지가 한참인데 여전히 겨울 날씨다. 오늘은 바람이 불어 더욱 춥게 느껴졌다. 봄은 아직 멀었나 보다. 추운 바람이 불수록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 건널목 앞에서 막 빨간불로 바꼈다. 이곳은 다음 파란불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지하도를 통해 건너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네모난 것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누군가의 방이다. 이것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매일 헐었다 다시 만드는 방이다. 안에 누구 있어요? 부르고 싶어졌으나 말았다. 스마트폰에 몇 장 담았다. 지나가는 여자는 나를 구청에서 나온 사람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술냄새가 나지 않는 걸 보면 모범 시민이다. 막 짓고 들어갔는지 주변도 깨끗하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이 당..

다섯 景 202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