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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관계 - 최규환

불편한 관계 - 최규환 신형 휴대폰을 쓰게 되었다 손가락에 마비가 올 정도로 연습을 해도 세상의 편의를 따라가지 못했다 글로벌 뱅킹으로 가입해 외국인으로 살 뻔도 했다 다음 생은 집 나간 아내가 뜬금없는 소식을 전해오거나 헤어지고 돌아오는 딸의 울먹임에 어쩔 줄 모르는 공중전화로 살고 싶었다 다음날도 그런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버릇에 길들여지다 보면 습관이 되는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몰라도 다행스럽게 그때까진 이렇게 살아도 될 듯싶지만 안과 바깥 사이 그 너머를 꿈꾸는 덜떨어진 멍청이로 사는 게 좋아서 마음만으로 사는 일이 힘든 오후 세상을 앉히지 않은 오랜 누각처럼 둥둥 떠 있다가 네모진 무게 안으로 나를 넣어두려는 미련일지라도 어느 날 흐르는 강물의 찬찬한 넉살로 남고 싶어 행여, 라는 말에 ..

한줄 詩 2022.02.15

굴뚝새의 겨울 - 이우근

굴뚝새의 겨울 - 이우근 살아가는 한해 한해가 늘 겨울이었다, 뜨겁고 서러웠다 폭염이었다 여름이 오히려 추웠다 목도리인 양 구름이 부축해 주었다 소나기는 면도칼이었지, 아마 사는 이치가 극과 극에 맞닿아 그것이 음과 양의 스파크가 되어 에너지가 되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질기고 약해도 핏줄이 아님이 없으니 당한다고 뭉개지지 않으니 개똥밭에 굴러도 더욱 개똥이 되어 거름이 되고 흔적이 되어 뒷날 꽃잎이 되고 별이 될지 누가 알리, 파닥이며, 인간의 겨울을 견딘다.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고속도로 1톤 트럭들 - 이우근 죽어라 달리는 미끈한 차들 속에서도 제법 잘 달리는 작은 트럭들 보고 있으면 즐거워라 배추나 양파 마늘 기타 등등 양(量)으로 뭉쳐야 돈 되는 거 잔뜩 싣고 가끔 돼지나 소도 ..

한줄 詩 2022.02.15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 류흔 시집

출판사 서평과 해설을 보면 이 시집을 읽은 당신에게 경배와 존경을,, 어쩌고 나오는데 나는 경배까지 받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두꺼운 시집이 나왔어? 하는 탄성 정도랄까. 실제 시집 마지막 페이지 숫자가 548이다. 다섯 권 정도의 시집을 한꺼번에 묶었다고 보면 된다. 실제 세 보지는 않았으나 시집 해설에서 322편의 시가 실렸다고 한다. 보통 시집 한 권에 60편 내외의 시가 실리고 값도 1만원 안짝인데 이 시집은 1만 3천 원이니 실린 시편에 비해 저렴하게 읽었다는 위안 정도랄까. 나같은 쫌팽이 독자는 이 고귀한 문학 작품에 책값을 결부시킨다. 어쨌거나 나는 몇 년 전에 읽은 첫 시집부터 이 시인에게 관심이 있었다. 비교적 시적 호흡이 고르고 자기 만의 개성이 담긴 시가 인상적이었다. 류흔은 흔히 시..

네줄 冊 202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