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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른 외곽 - 이우근 시집

시집 코너에서 시집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여성이 직원에게 묻는다. "선물 하려고 그러는데 요즘 잘 나가는 시집이 어떤 거죠?" 한쪽을 가리키며 직원이 안내를 한다. "여기에 진열된 책들이 잘 나가는 시집입니다." 가까운 곳이라 다 들린다. 직원이 안내한 코너는 흔이 메이저 출판사가 발행한 시집만 모아논 곳이다. 문학과지성, 창비, 문학동네 시집뿐이다. 그 시집들은 책장에 세워서 진열한 것이 아니라 앞 표지가 전부 보이게 바닥에 진열되었다. 타고난 아웃사이더인 나는 메이저보다 무명출판사 시집에 더 관심이 많다. 숨어 있는 시집 고르는데 관심을 두느라 곧 시선을 거뒀지만 잘 나가는 시집을 찾던 그 분은 어떤 것을 골랐을까. 모쪼록 좋은 시집과 인연이 닿았기를 바란다. 이우근 시집은 내가 찾은 보석 ..

네줄 冊 2022.02.08

인연이라는 것은 이처럼 유치한데 - 송병호

인연이라는 것은 이처럼 유치한데 - 송병호 눈썹에 쓸린 빗물을 손등에 훑는다 쉬 걷힐 것 같지 않다 물먹은 솜뭉치를 업은 소나기구름 시퍼런 칼날에 베인 폭포 창문 너머 얼비친 파전 굽는 뒤태, 비밀을 감춘 실루엣 어느 삼류 화가가 은소반에 흘린 보름달 같다 몇 순배의 잔과 짧은 혀끝 말 파전은 봉분 같고 달덩이 같고 고해하듯 성체의 단말기는 출구를 도모한다 꽃바람은 언제라도 넉넉하지 않다 얍삽한 조갯살 미궁으로 빨려 드는 가장 정직한 동질 급체에 바늘 찔린 외피의 화농 툭 떨어지는 저 붉운 꽃잎 (둘 사이) 이면의 계약서 같은 형식은 필요치 않았다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인연은 그냥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 송병호 인연이라는 것이 겉과 곁이 포개졌다 나뉜 하트의 반쪽처럼 상관의 결이 다르..

한줄 詩 2022.02.08

그 눈망울의 배후 - 복효근

그 눈망울의 배후 - 복효근 가난한 이웃나라 어느 빈촌에 갔을 때 진열대에 싸구려 과자만 잔뜩 쌓여있는 허름한 가게 하나 있었다 헐벗은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애처러워 몇 푼씩 주려 하자 안내를 맡은 이가 돈을 주는 대신 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한 봉지씩 쥐어주라고 했다 과자 한 봉지씩 쥐어주고 쓰러져가는 집들을 돌아보고 골목을 벗어나려는데 아이들 손에 들렸던 과자는 다시 거두어져 진열대에 놓이는 것을 보았다 내가 준 것이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내가 지은 것이 복이었을까 죄였을까 어느 하늘보다 별이 맑은 그 밤 끝내 묻지 못하였다 아이들의 머루알 같은 그 눈망울의 배후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현대시학사 입춘 무렵 - 복효근 혼자 살다가, 버티다가 딸내미, 사위들 몰려와서 가재도구 차에 나누어 싣고..

한줄 詩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