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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견디는 법 - 김명기

절망을 견디는 법 - 김명기 보증 서 준 친구가 야반도주를 하고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구경해 본 적도 없는 큰 빚이 너무 억울해 배를 내밀어 보았지만 보증서에 핏자국처럼 선명한 날인이 말라 갈수록 점점 더 단단하고 큰 빚쟁이가 될 뿐이었다 통장에서 빚이 빠져나가는 날이면 세상 있는 모든 욕을 끌고 와 저주를 퍼부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한 마음이 짓무르고 삶이 수척해졌지만 신기하게 빚은 점점 야위어 갔다 몇 해 동안 빚을 다 갚고 나니 그제야 도망간 친구의 안부가 궁금했다 더 이상 빚이 빠져나가지 않는 통장과 세상 모든 욕과 저주는 할 일을 잃었다 더는 만날 일 없을 테지만 한동안 나는 네게 보내는 욕설과 저주의 힘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이제 나는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 같다 어느 ..

한줄 詩 2022.02.18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 심재휘

심재휘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그는 1997년에 등단했고 햇수로 25년이다. 그동안 다섯 권을 냈으니 5년에 한 권 꼴이라 비교적 과작인 셈이다. 하긴 10년 만에 시집을 내는 사람도 많으니 이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네 번째 시집에서 홀딱 빠졌었기에 다음 시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4년 만에 나와 반가웠다.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 , 다. 이전의 시집 으로 2019년 제1회 김종철문학상을 수상했던 시인은 이후 런던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인 그는 연구년을 맞아 한동안 런던에 체류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런던에 관한 시가 여럿 실려 눈길을 끈다. 나는 2002년 12월 21일에 떠나서 2017년 5월 25일까지 15년을 런던에 살았다. 그 기간에..

네줄 冊 2022.02.17

밥집에서 - 이현조

밥집에서 - 이현조 곤드레밥집에서 차림표를 보던 아내가 어수리가 뭐예요 주인에게 묻는다 나물 중에 최고의 나물이죠 우문에 현답이다 주는 것만 먹다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맛난 것만 먹다가 몸에 좋다는 것만 먹는다 나물 중에 최고라는 말에 생전 처음인 어수리돌솥밥을 주문한다 잘 차려진 밥상 앞에서 어머 이걸 어떻게 다 먹지 너스레를 떤다 당뇨와 심근경색을 앓던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여의고 당뇨와 합병증을 앓는 엄마를 치매로 요양원에 모시고 중년의 나이에 깜박이는 기억력과 머리 어깨 무릎 발 허리 통증을 달고 사니 생긴 버릇이다 기왕이면 몸에 좋은 것이 최고여 천식으로 호흡기를 달고 살던 서방을 보내고 무릎 수술하고도 걷는 게 힘든 장모님 아픔으로 얼룩져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당부 자꾸만 배가 볼록해지는 딸..

한줄 詩 202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