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굴뚝새의 겨울 - 이우근

마루안 2022. 2. 15. 19:20

 

 

굴뚝새의 겨울 - 이우근

 

 

살아가는 한해 한해가

늘 겨울이었다, 뜨겁고 서러웠다

폭염이었다

여름이 오히려 추웠다

목도리인 양 구름이 부축해 주었다

소나기는 면도칼이었지, 아마

사는 이치가

극과 극에 맞닿아

그것이 음과 양의 스파크가 되어

에너지가 되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질기고 약해도 핏줄이 아님이 없으니

당한다고 뭉개지지 않으니

개똥밭에 굴러도

더욱 개똥이 되어

거름이 되고 흔적이 되어

뒷날

꽃잎이 되고 별이 될지

누가 알리,

파닥이며, 인간의 겨울을 견딘다.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고속도로 1톤 트럭들 - 이우근 

 

 

죽어라 달리는 미끈한 차들 속에서도

제법 잘 달리는 작은 트럭들 보고 있으면

즐거워라

배추나 양파 마늘 기타 등등

양(量)으로 뭉쳐야 돈 되는 거 잔뜩 싣고

가끔 돼지나 소도 싣고

공구(工具)나 잡물들을 싣고

무조건 짊어지고 그 한계까지 싣고

열심히 달리는 트럭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어라

생업의 현장이면 좀 고통스럽겠지만

풍경으로 지그시 보는

그 알싸한 위안

더러 싸가지 없이 끼어드는 승용차를 보며

우리의 용서를 스스로 학습하자

오죽 갈 길이 바쁠까

그들의 도착지가 어디이건

그곳에는 사람의 꽃이 피고

희망이라는 것이, 별 볼일 없는 것이라도

그런대로 부대끼며 창궐하면

미망(未忘)의, 창궐의 숲이라도 일굴 것이다

개구멍도 문이니 열심이면 큰 문 열릴, 하여

자신이 점령할 성(城)으로의 당당한 개선,

그것이 수백 번 거듭되어 강물로 흐르면

그것의 결과

그것은 정말 즐거운 일,

사는 일에 가속(加速)을 붙이면,

꽃필 날 멀지 않을 것이다

꽃필 날 멀지 않아 이미 꽃이다.

 

 

 

 

# 이우근 시인은 경북 포항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문학.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