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흔적 - 우혁
너를 밟았다
그리고 내 손에 너의 발자국이 묻어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손이 시렸고, 또 누군가의 화초처럼
난 늙는다
답이 정해진 질문이 아니기에
끝없이 되물어보는 버릇
언제나 당신은 두 번씩 답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구름이 발자국이며, 하늘이라 이름 붙인
어느 우주는 이토록 동그랗다
어떻게 하든 난 길을 따라갈 것이었으면
굳이 길을 길이라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버릇 - 우혁
늙지 마라 했던 짧은 충고는 손등 위에 주름으로 남았다
솔직히 거짓말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재림했다
오우 너는 얼마나 거룩했지 오늘, 지금, 그대로
늙지 마라 했던 충고는 알고 보면 고백이었다
예를 들면 자랑은 아니지만이라고 시작한 말들은 필히 자랑으로 끝나고 솔직히 말하면이라고 붙이면 자신의 의도가 왜곡된 채 말이 끝난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라는 확정적 언명은 미필적고의의 의심이다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 사실은 못 한다
길만 남아 있었다
얘야 어서 가자니까 말은 아까부터 끄덕이잖니
다리는 떨지 말고 숨도 아껴서 쉬어야 해
오늘은 밤이 온다 내일도 올 것이기에, 말밖에 없는 이 행성에선 너무도 당연하면서 몇 남지 않은 버릇이다
# 우혁 시인은 1970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대 인도어과를 졸업했다. 2002년 <미네르바>로 등단했다. <오늘은 밤이 온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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