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창조해놓고도 - 김수우
청개구리 두마리 내 방에 찾아든 날
우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죽음은 거미를 닮아 어디서나 집을 짓는 중이다
어쩌자고 저 어린 것들 여기 닿았나
화성 탐사를 하듯 망망대해 우주를 건너
내 방으로 들어선 두 마리 초록
등이 선득했다
순수한 초록은 얼마나 날카로운가
들어온 데로 나가겠지, 외면했다 무서웠다
상추도 뜯다가 개밥도 주다가 하루를 지내고
까무라친 한 놈을 모서리에서 발견했다 빗물에 내놓았다 엉금거렸다
괜히 사진첩 들추던 이틀째
한 놈을 찾았다 빗물에 내놓아도 등이 뻣뻣하다
당장 신을 만들었다 신이 필요했다 모래알만 한 기적이 간절했다
기도했다 살려주세요
방 안은 수분 한 방울 없는 광막한 사하라
우물을 숨기지 못한 내 영혼이 바삭거린다
죽음은 원래 알몸이어서 어디서나 집을 허물고 만다
치명적인 별을 탐사하고 깊은 은하를 건너간 두 우주인
우기였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신을 창조해놓고도
나는 또 어느 우주로 돌아갈 것인가
안경 너머가 막막해졌다
*시집/ 뿌리주의자/ 창비
이승잠 - 김수우
미음 몇 술 뜨고 진통제를 삼킨 엄마
금세 곯아떨어진다
어둠을 밝은 데로 끌어내려는 듯
입을 벌린 채 동굴처럼
벌어진 목구멍으로 매화가 피어난다
바람 한점 없는 암병동 침상에서 홀로
한 꽃 떨어지고 한 꽃 터진다
가슴팍 두개의 낡은 창고엔
여든여섯 갈피 봄, 여든여섯 굽이 매화숲이 살고 있는가
덜겅대는 문짝 찐득찐득한 그리움을 밀고
돌아오는 매화, 돌아가는 매화
사랫길 아득하다
조심조심 노동의 담장이 허물어진다
먼지의 고집을 닮은 엄마의 창고는 전부가 문이었다
첫사랑을 오래 연습해온 모양이다
풀거미에게 혼자 젖 물리던 날들
그렁그렁한 눈물로 새벽달이 서성인다
기어이 바닥을 짚었는가
창고는 헝겊 주머니가 되었다
이승잠 속에서
하루하루 고요해라
환해라,
일곱 남매 악착같이 빨아댄 젖멍울
투정 많은 세상에 아직 물리고 싶은 걸까
창가에 매화 날린다
# 김수우 시인은 1959년 부산 출생으로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길의 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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