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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이력서 - 김명기

손의 이력서 - 김명기 손은 밥을 버는 힘이다 인디언들은 손의 힘을 돋우기 위해 사냥 나서기 전날 밤 밤새 손바닥을 두드리거나 손으로 북을 쳤다 막노동 새벽밥 사십 년이나 먹었다는 목수 오야지 황 씨 벌겋게 달아오른 드럼통에 언 손을 녹이고 허리춤에 장도리를 빼내어 굵은 손가락 마디를 두드린다 "요로코롬 두딜기 주야 곱은 것이 바로 펴지제 하도 두딜기서 손도 지 손인지 모를 것이여 손바닥을 두딜기면 굳은살 땜시 튕겨 나온당게" 살리겠다고 내민 손을 해치는 줄 알고 물어 버린 개 버림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손등에 옮았다 상처를 붕대로 감싸고 보니 잡힌 저나 잡아 온 나도 한동안 밥걱정은 덜겠구나 싶은 날 인디언처럼 늙은 목수처럼 상처 입은 내 손이 모처럼 선해 보인다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

한줄 詩 2022.03.11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 김명기 시집

시집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인이 있는데 김명기 시인이 그렇다. 어쩌다 이 시인에게 꽂혀 찐팬이 되었다. 누구 영향 받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성격이라 시인에 대한 호불호도 내 스스로 터득한 기술이다. 채이거나 엎어지면서 무릎팍이 까지는 온갖 생채기 뒤끝에 얻은 것이다. 나는 지금도 시인이나 평론가 등 명사들이 추천하는 책을 믿지 않는다. 처음부터 안 믿은 것은 아니다. 믿고 따라가 봤는데 별로였기에 가능한 따라가지 않는 것뿐이다. 그들의 지성을 존중한다. 그들은 좋은 책을 추천할 자격이 있다. 다만 내 능력 밖의 고급 수준이거나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다. 내가 아무리 독고다이라지만 귀를 완전히 막고 사는 것은 아니다. 思考도 고여 있으면 썩는다. 나라고 왜 확증편향이 없겠는가. 어쩌면 태극기 할배들 못지..

네줄 冊 2022.03.11

사흘째 가는 비가 와서 - 심재휘

사흘째 가는 비가 와서 - 심재휘 -런던 사흘째 가는 비가 와서 굴뚝 연기들도 지붕을 타고 흘러 내렸다 보건소의 얼굴 짙은 의사는 웅얼거리는 표정을 겨우 만들었다 골목까지 내려앉은 하늘 불지 않는 바람 젖기만 하는 나무의 날들, 지빠귀는 한번 더 운다 런던은 비닐로 오래 덮어둔 반죽 같고 저 멀리 빌딩 옥상에서 비 맞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까마득하지가 않고 비에 웅크린 지붕들처럼 걷는 소리만 가득한 거리 그외에는 신기한 것도 궁금한 것도 없이 비가 온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조차 모두 한통속이 되어 버스를 기다린다 오른쪽을 바라본다 얼굴이 뭉개지도록 사흘째 가는 비가 와서 얼굴에서 흘러 내린 자그마한 얼을 손에 받아 들고 걸음은 멀리 가야 한다 반죽을 아무렇게나 뜯어도 수제비가 되던 그런 생애를 다시 ..

한줄 詩 202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