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암에서 - 박남원 찬 바람 아직 부는 이른 봄 산굽이 물굽이 짚신처럼 길을 떠나 지리산 백장암 같은 곳에 가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잔설이 밀가루처럼 남아있는 산지붕이 코앞까지 다가오며 백장의 거친 숨결이 어슬렁거리듯 넘나드는 천의 계곡 굽이쳐 흐르는 물살이 일순 저승처럼 아찔한 발아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지만 그 어지러운 기슭을 올라 일단 백장암 마당까지 이르기만 하면 두툼한 이끼를 탑신에 털옷처럼 입은 삼층석탑이 놓인 절 마당에 오르는 동안 내내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던 지리산이 오히려 그곳에서는 한 식구처럼 모여 있고 세상 너른 바다도 잔잔한 파도로 고스란히 앉아 있다. 지심 깊은 꽃 숨결이 힘겹게 지상으로 밀려 올라오는 이른 봄 백장계곡. 아직 바람 불고 살 시린 발아래 세상, 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