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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새들이 가득한 날 - 박지영

공중에 새들이 가득한 날 - 박지영 지친 노동에 하루 치가 뭉그러진 곳에는 당신이 있습니다. 맨드라미, 민들레, 나비, 종달새에 이르기까지 햇빛 쨍한 날 찾아가는 친정집 향한 풀섶 위에 발등을 가르는 바람 소리로 솔깃하던 당신, 태풍 소식에 대목장도 서럽고 동동거리는 마음에 빈궁한 장바구니를 뒤로 감추며 남은 아이 둘 데리고 도끼비시장을 배회하다 보면 도래지를 잃은 도래지를 잃은 날갯짓이 공중에 가득합니다 *시집/ 돼지고물상 집 큰딸/ 실천문학사 아버지의 하루 - 박지영 마지막 넝마주이가 집을 나서면 그 시끄럽던 마당도 30촉 전구 하나만 흐릿하게 남는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낮에 들어온 이웃집 송사의 무임 대소서 일을 시작했다 불 끄라는 엄마의 통박에 아버지가 하시던 말은 '이거라도 해야 우리 먹고사는 일..

한줄 詩 2022.03.14

셋 중 하나 - 이현승

셋 중 하나 - 이현승 세상에 부모는 세 종류뿐이다. 서툰 부모, 어리석은 부모, 나쁜 부모. 팔이 부러진 신(神)은 놀라서 울고, 아프고, 잠들고, 소스라친다. 아픔을 보는 것만으로 몇 배는 더 아플 수 있지만 결국 대신 아플 수는 없으며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자기를 책망하고 힐난하는 것밖에 없다. 불행을 믿고, 불안에 의지하며, 행운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쓸쓸한 신앙인일 수밖에 없다. 팔에 붕대를 감은 신은 깨어나 롤리팝을 핥으며 세상을 다 가진 미소로 화답하기까지는.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죄인 - 이현승 회귀란 너무 멀리 떠나왔다고 자각한 자의 것일까 회심은 늘 그 자리에서 멈춘다. 돌아갈 수 없는 자에게 떠나온 자리는 책망의 자리다.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킨 ..

한줄 詩 2022.03.14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 최백규 시집

모처럼 혼신을 다해 빨려들어가 읽은 시집 하나를 만났다. 일단 라는 서정성 짙은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아마도 제목으로나 작품성으로도 당분간 이만한 시집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 회자될 시집은 제목부터 먼저 뇌리에 확 박혀야 한다. 시 내용 또한 서른 살의 시인이 맞는가 싶게 밀도가 있어서 여백에서마저 긴 여운이 남는다. 耳順의 시를 쓰는 서른 살이랄까. 독자를 빨아 들이며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은 이 시인의 탁월한 능력이다. 시집이 나온 게 올 초인데 의도된 오타인가. 단 한 줄의 시인의 말 끝에 2022년 여름에 시집을 냈단다. 가까운 미래다. 첫 시집인데 할 말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런 시인의 말 또한 깊은 공감이 간다. 이래저래 괜찮은 시인 하나 가슴에 담..

네줄 冊 202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