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저 공장의 불빛 - 이우근

저 공장의 불빛 - 이우근 노동이 제물(祭物)이지는 않다 신성(神聖) 하다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걸레 삶은 물로 밥해 먹는 그 인격은 천혜(天惠)의 신분에 반비례 남의 짧은 길, 나는 왜 돌고 돌아가는 지 도생(圖生)의 결과물로 몇 푼 봉급, 훌륭했지, 부끄럽지 않으이 내 한 몸 희생하면 즐거운 나날 훈장이 아니었지만 정말 훈장이었지 잘, 더럽게, 질기게, 살았다고, 삶의 명세서를 나의 코밑으로 드민다. 그러나, 가령, 그렇더라도 불빛으로 위장을 해선 안 된다 불빛으로 위장되어서도 안 된다 생산은 있어도 자위로는 안 된다 소모품으론 더 이상 안 된다 밥 먹기 위해 땅을 다지는 날들 좀 서러운 날들의 연속 어쩌나, 도시락으로 챙김, 그래도 가야 하니, 참 먼 길.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

한줄 詩 2022.03.13

양철지붕에 비 긋는 소리 - 장시우

양철지붕에 비 긋는 소리 - 장시우 따뜻한 그늘이 보이지 않는 오늘은 비 내리는 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계절, 양철지붕에 비 긋는 소리 듣는 낯익은 듯 낯선 저녁 귀 기울이다 익숙해진 소리들 사이 벽을 넘어온 보일러 소리가 방을 흔든다 혈관에 피가 도는 소리 같은 거 기척을 보낸다는 것 살아 있다는 고백 같은 것 잠잠해진 가습기를 건드린다 기다렸다는 듯 물방울을 뿜는다 너도 살아 있구나 라디오 전원을 넣고 볼륨을 올린다 어댑터와 규칙적이거나 불규칙하게 엉킨 전선을 타고 사람이 오고 음악이 흐르고 숨어 있던 소리들 쏟아진다 라디오 속에 살던 사람들이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그 사람들, 어느 과거에서 둥둥 떠다니겠지 딸!깍! 전등을 켜자 눈을 뜨는 방 어느 선을 타고 건너온 걸까 저 빛은, 허공을 떠다니는..

한줄 詩 2022.03.13

붉은 사막 - 박숙경

붉은 사막 - 박숙경 눈물 글썽이던 별 하나를 머리맡에 두고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와 불시착 사이에서 당신을 또 놓쳤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 걸었지만 발자국은 금세 사라졌다 온몸이 아파왔다 새끼를 빼낸 자국은 오래된 모래층 같아서 손톱을 세워 긁고 나면 다시 자라나는 배꼽 한참이나 눈을 뜨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간신히 새벽꿈을 건너면 온통 붉은 사막 몸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주소 낙타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고 꿈속에서 누가 말했던 것 같다 사막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시집/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 문학의전당 흔적 - 박숙경 -대상포진 압축된 잠복기가 풀리면서 꽃의 비명이 바람에 실려 왔다 저, 출처 불분명의 레드카드 낯선 내가 뾰족이 돋았다 자정 부근에서야 어둠의 모서리에 오른쪽의..

한줄 詩 202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