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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건축 - 최백규

무허가 건축 - 최백규 우리는 그저 혈관 아래 불을 지피는 개들이었다 지하상가 라디에이터 앞에서 피 묻은 손바닥을 덥히며 재미있었다고 그래도 다시는 못하겠다 같은 말이나 흘리다가 웃을 날이 번질 테지만 아직 불발인 폭죽에 계속해서 성냥만 긋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하니까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욕설조차 없이 떠나버려도 녹슨 세면대처럼 여기에 있다 개의 이빨로 얼음을 깨무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매일 하나씩 악몽들 적어 선물하면 언젠가 눈빛이 조금 더 사나워져 있을까 관에 들어가 묶이는 건 포토 부스 안처럼 뻣뻣하고 어색할까 막연하게 그려보는 너의 노년은 언제나 혼자여서 어디서부터 놓아주어야 할지 따위의 생각만 잔뜩 했다 턱을 괸 염색이 제대로 먹지 않아 슬픈 너와 손을 잡으..

한줄 詩 2022.03.15

볼륨 - 김승종

볼륨 - 김승종 몰래 화장하고 부드럽게 떼를 써도 삶은 한정된 볼륨 누구나 위대한 말씀 따라 레버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하지만 익숙해져 풀 죽었다가 이마저 낯설어져 또 꿈꾸려 하고 흰 머리칼 버리기를 우리는 꺼리는지 몰라 오늘은 볼륨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그대로 들으며 만취한 꿈속 쓸쓸한 루주 칠한 몸 깨워 자기 앞의 삶 그 시작과 끝을 이제 한번 노닐어 보자 사라져 가네 뭉클한 것 화살인가 활인가 과녁인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인가 우리인가 볼륨을 높이고 숨겨 둔 춤을 춰 보아야 하나 소식 준 옛 친구여 그대 오늘은 유죄다 그것을 알아내기를 오토산(五土山)을 그리워하는 견자(見者)들에게 먼저 알리고 우리 젊은 날에도 회수(回首)의 편지를 쓰기를 구태여 그 끝에 '이제 안녕히'라고 쓰든 말든..

한줄 詩 2022.03.15

대산문화 2022년 봄호, 발견 시

희망을 내포하고 막바지로 치닫는 중일까.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꽃이 피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남쪽에는 매화가 피기 시작한 모양이다. 대산문화 봄호에서 눈에 띄는 시를 발견한다. 좋은 시는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눈과 가슴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이런 걸 공감이라고 하던가. 잊힐세라 필사를 시도한다. 한 자씩 누를 때마다 이 시가 더욱 가슴에 박힌다. 행간은 물론이고 助詞 하나까지 버릴 게 없다. 여운이 오래 남는 시다. 탑신에 내리는 눈 - 기혁 촛불이 내부의 어둠을 태워 불을 밝힌다고 속단했으나 나의 무게는 이내 돌멩이의 내면에 부딪치고 말았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던 인연들이 단 한 번 발길질로 무너져 내릴 때 그것은 스스로 열린 적 없는 암석의 외부가 아니라 수천 년 풍화로..

여덟 通 202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