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 최백규 시집

마루안 2022. 3. 13. 19:54

 

 

 

모처럼 혼신을 다해 빨려들어가 읽은 시집 하나를 만났다. 일단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라는 서정성 짙은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아마도 제목으로나 작품성으로도 당분간 이만한 시집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 회자될 시집은 제목부터 먼저 뇌리에 확 박혀야 한다. 시 내용 또한 서른 살의 시인이 맞는가 싶게 밀도가 있어서 여백에서마저 긴 여운이 남는다. 耳順의 시를 쓰는 서른 살이랄까. 독자를 빨아 들이며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은 이 시인의 탁월한 능력이다.

 

시집이 나온 게 올 초인데 의도된 오타인가. 단 한 줄의 시인의 말 끝에 2022년 여름에 시집을 냈단다. 가까운 미래다. 첫 시집인데 할 말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런 시인의 말 또한 깊은 공감이 간다. 이래저래 괜찮은 시인 하나 가슴에 담는다.

 

엑기스만을 모으느라 그랬을까. 보통 60편 정도를 묶는데 반해 한 권 시집 편수로는 다소 빈약한(?) 46편의 시가 실렸다. 그래도 양보다 질을 생각하면 얇은 시집에 비해 무게감이 있다.

 

시집 말미에 박상수의 해설에서도 언급되듯이 최백규 시인은 갓 서른 살의 나이에 30년 전 단어와 풍경을 곧잘 구사한다. 그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세련되게,, 어쩌면 대부분의 요즘 시인들 시에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이 시집은 단박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인을 본 적 없지만 시만 읽고도 어느 정도 외모가 상상이 된다. 모가지와 손가락이 길어서 무지 착할 것 같은 시인이다. 어둡고 축축한 마루 밑의 개 눈빛을 사랑하고, 장마철이면 더 뽀송뽀송하게 정서가 되살아나는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집을 반복해서 읽고도 그냥 두기 아까운 이 시인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난감하던 차에 뒷표지에 정끝별 시인의 추천사가 보인다. 그래, 바로 이 문장이다. 내 생각을 족집게처럼 집어 낸 문구를 옮긴다.

 

*숨이 희거나 영혼이 흰 사람은 눈물도 흴 것만 같다. 흰 꽃처럼 글썽이던 눈물은 한여름 끝내 눈으로 내릴 것만 같다. 흰 눈마다 향 사르는 냄새가 자욱했을 것이다. 긴 장마였으리라. *정끝별 시인 추천사 일부

 

이제 3월인데 나는 일찌감치 올해의 시집으로 찜한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고 다섯 번쯤 읽고 나니 더 확고해졌다. 이 시집 때문에 곳곳이 퍼렇게 멍이 들었다. 내가 어떤 권위 있는 문학상 심사위원이라면 주저 없이 이 시집을 추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