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길 - 이문재

마루안 2016. 12. 22. 19:58



길 - 이문재
-한 시절은 길을 어깨에 둘러메고
 산 그림자 밟으며 걸었으니
 길이 키우던 여자와



처음에는 길을 탓할 것이다
맨처음의 사람을 속절없어 하며
온 길을 뒤돌아 볼 것인데
길에 깔린 그만한 세월도 더불어
푹 한숨을 내려놓을 것인데
식어간 사랑도 빈손에 가득 들릴 터이고
가을 시린 냇물에 얼굴의 땟국물도 벗길 테지만
길을 탓하지는 말 일이다


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면
벌써 마음은 젖은 신발을 벗고
마루턱을 올려다보면 구름도 버거울 것이네
빈 벌판 아득하고
더우기 행인 없는 저문 길일 때에도
등짐에서 낫일랑 꺼내지 말기로 함세
까치밥으로 남긴다는 무우 한 입
베어 물면서 먼지낀 귀를 열고
별빛들 내려오며 부딪는 풍경소리 들어도 봄세
이렇게 걷지 않으면 마른 길에도
몹쓸 풀 우거지지 않겠는가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민음사








길 - 이문재



강변 마을
지정벽보판의 벽보도 바래고
쫒기는 사람의 어깨죽지도 시들할 터
공복을 안고 마른 길 걷는
칠월, 큰산이 내놓는 물이 길고
큰 사람 아래 어린 사람들 그늘을 이루니
봄날 아지랭이가 키워올리던 종달새 가고
햇빛 이렇게 변해서
쫒기는 사람 제 그림자에 놀라는
휘영청 달빛의 십리 길,
팔월이 와도 쫒길 사람, 그날 밤은
이슬 기다리는 풀섶에 누워
고향 같은, 젊은 과부만 같은
젖은 바람을 온몸에 칠하고 있었으니,
하염없어라, 안개를 촘촘하게 만드는
새벽 뻐꾸기 울음소리
쫒기는 사람의 빈 주머니를 채우고
진해져만 가는 피를 강에 버리게도
했으니, 먼지 나지 않는 죄
저만치서 기다리고 혹은 앞질러
가고
사람을 사랑하면
죄가 되는 일이 있다, 사람답게
사는 일을 쫒아다니다 보면
쫒겨다니게도 된다





# 들켰다. 딱 내 얘기다. 사람을 사랑하면 죄가 되는 일이 있다니,, 나는 여전히 쫓기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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