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들키고 싶지 않은 生 - 원무현

마루안 2018. 2. 6. 21:48



들키고 싶지 않은 生 - 원무현



問喪을 다녀온 늦은 시각
한 마리 소처럼 누웠다
이른 아침을 떠나 황혼을 건너고
접객실에서 술을 마시며 화투
패를 돌린 하루 산 자의 가슴속에 찍힌
망자의 발자취를 어루만지는 것도 잠시
결국 내일이 보이지 않는
어제와 오늘을 울고 웃던
짧은 밤을 멍에 지고
시간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 다녔던 몸뚱어리를 눕혔다
아 그러나 고삐 잡혔던 몸이여
아무리 앞이 캄캄해도
아무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생이 남아는 있는 것인가
한 여름밤 소꼬리처럼 팔을 휘저으며
모기를 쫓고 또 쫓는다



*시집, 사소한 아주 사소한, 지혜








중년 - 원무현



턱에 수염이 나면서
면도칼로 비누거품을 밀었지
검은 숲 위에 뭉게뭉게 피어난
뭉게구름을 밀다가
면도칼을 허공에다 촥촥 뿌리면 나비
구름나비가 휙휙 날았지
거울은 금세 구름나비정원이 되었지
이십대 삼십대
그때 면도칼은 노리개였지


쉰 줄에 든 요즘
비누거품에 핏빛이 자주 물드네
칼등에, 집세 밀렸다는 집주인 닦달이 걸터앉고
승진도 물 건너 간 것이 밤일마저 부실타는
마누라 면박까지 더해진 때문일까
이윽고 없는 자궁이 다 답답한 중년이 옹크린 때문일까
그때마다 면도날이
내려앉는 생의 중압감을 어떻게든 버텨 보느라
살 속으로 발을 푹푹 빠뜨리는 때문일까
그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