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 이설야 시집

마루안 2018. 9. 16. 21:38

 

 

 

이설야는 첫 시집부터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시인이다. 이름부터가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처럼 들린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자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폭포 아래서 무예를 닦고 여자는 남자를 기다린다. 그 세월이 근 10년이다.

시집은 제목부터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요즘 시집답지 않게 아주 서정적인 제목이다. 다소 무겁지만 이런 시집은 제목이 시집다워서 좋다. 요즘 영화든 책이든 일단 튀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한심한 제목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니면 잘 팔리는 책과 혼동하기 쉽도록 적당히 닮은 이름을 지어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화끈하게 튀거나 잘 팔리는 말랑말랑한 제목에 적당히 묻어 가거나다. 책장사도 먹고 살아야겠지만 내용과 전혀 부합되지 않고 정체성까지 혼란스럽게 하는 제목은 삼가했으면 한다. 그것이 신선함으로 느껴지지 않고 천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설야 시인은 시에 대한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시를 쓴다. 누구나 시를 대충 쓴다고 하진 않겠으나 읽으면서 내공이 저절로 느껴지는 시가 있다. 아! 이 사람, 제대로 된 시를 쓰겠구나 하는 직감 말이다. 순탄하지 않았을 시인의 삶도 시에서 짙게 풍겨난다.

상상에서 나오는 시적 체험이 아니라 몸으로 겪은 체험이다. 머리에서 나오는 시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시다. 이건 그럴 듯한 상상력을 동원해 억지로 꾸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사무쳐서 쏟아져 나오는 싯구를 잘 다듬어 호흡을 조절하는 솜씨도 좋다.

할 말이 많아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누군들 시집에 대한 애착이 없을 것인가. 시인은 보여주고 싶은 시적 재능을 조절할 줄 안다.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라는 역설적인 제목임을 감안해도 많은 시가 대체적으로 어둡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의 달동네는 시인으로 만들어준 뿌리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가족사가 있기 마련이지만 시인의 가족은 애증으로 가득하다. 생활력이 약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자기로 인해 희생하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 어머니를 향한 연민 등을 아주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 시집을 끝으로 시작 활동을 멈추고 사라져버린 시인이 많다. 모쪼록 이설야 시인은 탁월한 시적 재능을 더욱 활발히 펼쳤으면 한다. 나부터가 편안하고 행복할 때 시를 읽기보다 삼겹살과 술을 가까이 하게 된다.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겠으나 적당한 배고픔은 안일함을 물리친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