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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 - 허림

고랑 - 허림 느티나무 그늘로 들어선다 주먹만 한 새들이 떼로 날아왔다 구름처럼 몰려들어 왁자지껄하다 느티나무 이파리가 바르르 떤다 한소데기 소나기가 지나갔다 하늘을 건너온 새들의 길이 젖어 있다 듬성듬성 찍힌 구름의 발자국이 일그러진다 가끔 여든의 어머이는 수정 같은 눈물을 닦아낸다 어떤 서러움 때문은 아니리라 뒤꿈치 터지고 굳은살 진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일 수정 같은 눈물이 어찌 찝질하기만 할까 하루에도 수백 번 흘러간 길들이 얼굴 가득 자글자글하다 길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보이지 않다가 환히 보인다 해도 그저 허리 한 번 펴고 다시 긴 고랑에 엎드려 두더지처럼 지나갔거나 그 길이 어찌 아니 보이겠느냐 그 길이 어찌 각인되지 않았겠느냐 *시집, 울퉁불퉁한 말, 시로여는세상 맨드라미 - 허..

한줄 詩 2018.10.20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 - 강재남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 - 강재남 빈손인 내게도 가을이 찾아왔다 무엇을 남기며 살고자함이 아니었지만 풍요로 남실거리는 들판이나 날개를 접은 저녁, 놀이 물드는 하늘을 보노라면 자꾸만 내 빈손이 들여다뵌다 발걸음 따라 걷다 온 수월리, 하양지를 돌아 나오는 길섶으로 청노루 따먹던 연한 칡순이 계절을 잊은 듯 땅으로 뻗쳐 보랏빛 웃음 흘리고 있다 철지난 그 꽃 어제를 모르고 스산한 바람 앞에 한줌 흙이 되어 땅으로 질 터인데 거짓 없이 싹틔우고 꽃 일궈냈음을 스스로 자랑 숨기고 소리 없이 질 터인데, 지상의 꽃들 일제히 우우 소리로 존재를 드러내 어찌 바람에 몸 맡기어 흔들리고 싶지 않으리 생각의 마디 툭툭 꺾어 마음불 지피고 싶지 않으리 비우고 걸어가는 꽃길을 따라 이 가을 나도 해탈을 향하여 서늘하게..

한줄 詩 2018.10.18

조용한 삶의 정물화 - 문광훈

손에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다. 저자의 빼어난 문장력 덕분에 술술 읽힌 덕이다. 그렇다고 추리소설 읽듯이 줄거리만 따라 간 것은 아니다. 그의 문장은 예술적 체험에서 나오는 깊은 사유가 들어 있기에 조용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두 번씩 읽은 대목도 여럿 있다. 그래도 복숭아 먹고 난 후에 손가락에 남은 향기처럼 여운이 여전하다. 그만큼 그의 문장은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질투심을 유발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살지만 저자의 예술적 일상은 모방하고 싶다. 문광훈 선생이 유명 작가는 아니다. 거기다 책을 낸 출판사도 생소하다. 그러나 책 내용은 쉬이 단물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알차다. 라는 제목도 시적이어서 좋다. 저자의 소박하지만 풍성한 일상과 아주 어울린다. 이런 책은 신..

네줄 冊 2018.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