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 - 강재남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 - 강재남 빈손인 내게도 가을이 찾아왔다 무엇을 남기며 살고자함이 아니었지만 풍요로 남실거리는 들판이나 날개를 접은 저녁, 놀이 물드는 하늘을 보노라면 자꾸만 내 빈손이 들여다뵌다 발걸음 따라 걷다 온 수월리, 하양지를 돌아 나오는 길섶으로 청노루 따먹던 연한 칡순이 계절을 잊은 듯 땅으로 뻗쳐 보랏빛 웃음 흘리고 있다 철지난 그 꽃 어제를 모르고 스산한 바람 앞에 한줌 흙이 되어 땅으로 질 터인데 거짓 없이 싹틔우고 꽃 일궈냈음을 스스로 자랑 숨기고 소리 없이 질 터인데, 지상의 꽃들 일제히 우우 소리로 존재를 드러내 어찌 바람에 몸 맡기어 흔들리고 싶지 않으리 생각의 마디 툭툭 꺾어 마음불 지피고 싶지 않으리 비우고 걸어가는 꽃길을 따라 이 가을 나도 해탈을 향하여 서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