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랑 - 허림

마루안 2018. 10. 20. 17:17

 

 

고랑 - 허림


느티나무 그늘로 들어선다
주먹만 한 새들이 떼로 날아왔다
구름처럼 몰려들어 왁자지껄하다
느티나무 이파리가 바르르 떤다
한소데기 소나기가 지나갔다
하늘을 건너온
새들의 길이 젖어 있다
듬성듬성 찍힌 구름의 발자국이 일그러진다
가끔 여든의 어머이는 수정 같은 눈물을 닦아낸다
어떤 서러움 때문은 아니리라
뒤꿈치 터지고 굳은살 진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일
수정 같은 눈물이 어찌 찝질하기만 할까
하루에도 수백 번 흘러간 길들이 얼굴 가득 자글자글하다
길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보이지 않다가 환히 보인다 해도
그저 허리 한 번 펴고 다시
긴 고랑에 엎드려 두더지처럼 지나갔거나
그 길이 어찌 아니 보이겠느냐
그 길이 어찌 각인되지 않았겠느냐


*시집, 울퉁불퉁한 말, 시로여는세상


 

 



맨드라미 - 허림


바람이랬다

맨드래미가 뒤늦게 피어 더 붉다

잠자리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날아간다

여든에 찾아온 치매

어미가 종일 걸레를 빤다

평생 풀지 못한 마음 이제라도 풀어내려는지

그런 어미를 어련하게 바라보는 일

사랑할 일 아니면서

삶의 끝을 바라보는 일

먹먹하여 오랫동안 서 있다

돌아섰다

시월 아흐레 바람이 우련히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