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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서 내려 온 가을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집을 만났다.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대문을 열면 잠시 들어오라고 할 것 같은 집이다. 내 어머니가 살고 있다면 불러 보고 싶은 집이다. 점점 지붕이 있는 집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김장보다 더 큰 일이 지붕을 올리는 일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볏집으로 엮은 이엉으로 지붕을 덮는 일은 여자가 할 수 없다. 서른 아홉에 홀로 된 어머니는 이후 모든 일을 당신이 하지 못하면 남의 손을 빌려야 했다. 평소 논일 밭일 등 품앗이로 품을 팔아 그 댓가로 우리집 지붕 공사를 동네 남자들이 했다. 한 번 하면 몇 년 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삭은 이엉을 걷어 내고 새로 올려야 했다. 입에 겨우 풀칠 하는 정도의 가난함을 벗기 위해 어머니는..

다섯 景 2018.10.09

오늘의 눈물을 어디에 어떻게 조금씩 사용해야 하는가 - 서규정

오늘의 눈물을 어디에 어떻게 조금씩 사용해야 하는가 - 서규정 만약에 말이다 꿈도 추억도 나무도 해산되어 낙엽으로 날리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말이다 어디에 어떻게 눈물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연구를 해본 적이 있니 직장에서 잘릴 듯 말 듯 연처럼 춤을 추며 하루를 또 하루를 살고 아침 베란다에서 걷어 출근시킨 가장을 밤깊은 파출소에서 걸레로 찾아 낸 시퍼런 루즈의 분화구에서 솟는 불, 불 속의 잎 불을 끄러 몰려 온 상어의 이빨처럼 파도가 흰, 해변의 서민 아파트 그 집의 불은 아직도 눈물이 끄는가 베란다에 다시 척척 얼어 붙는 남자 하나 그것이 끝까지 줄을 잡아야만 했던 이유이다 *시집, 직녀에게, 도서출판 빛남 한 퇴폐주의자의 퇴로 - 서규정 신성한 것이 모독이었다 우렁커렁 인간의 울음소리를 ..

한줄 詩 2018.10.08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강창래

이 책은 인문학자 강창래가 암 투병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며 써내려간 메모들을 엮은 책이다. 강창래 선생과 출판사 대표인 아내 정혜인은 동갑내기 부부다. 35년을 함께 살다 어느 날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중 병색이 깊어지자 아내의 부탁으로 그녀를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이 그렇듯 라면만 겨우 끓일 줄 알았던 남자가 요리사로 변신하는 과정이 꼼꼼하게 적혔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이걸 계기로 가족과 인생의 소중함도 절실하게 깨닫는다. 많은 부분에 레시피와 설명이 달려서 남자를 위한 요리책이라 해도 되겠다. 동갑내기 부부로 알콩달콩 친구처럼 살아왔지만 이별을 예감하고부터 남편은 암 투병을 하는 아내에게 하나라도 먹이려고 환자식을 선택하고 아내는 자신이 죽고 나면 혼자 남을 남편..

네줄 冊 2018.10.06